[뉴스핌=황유미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가 23일 오전 8시 4분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37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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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2일 오전 서울 광진구 영화사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네팔지진 피해자 돕기 성금 전달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故 김군자 할머니 [뉴시스] |
나눔의 집에 따르면 김군자 할머니는 1926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났다. 10대에 부모를 여의고 17살이 되던 나이에 중국 지린성 훈춘 위안소로 강제 동원됐다.
김 할머니는 생전에 "하루 40여명을 상대로 성노리개가 돼야 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김 할머니는 위안소에서 도망치거나 저항을 하다 맞아서 왼쪽 고막이 터졌다. 할머니의 왼쪽 귀는 평생 듣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위안부 생활 3년간 자살을 7번 시도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뒤 할머니는 걸어서 고향까지 왔다. 위안소에 끌려가기 전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와 3개월간 동거를 하기도 했지만, 남자는 곧 세상을 떠났다.
김 할머니는 1998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시설인 나눔의 집에 입소했다. 김 할머니의 생전 소원은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 사과와 정당한 배상을 받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배상금은 사회에 기부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지금까지 김 할머니는 한국 정부로 받은 배상금 4300만원 등을 모아 '아름다운재단'에 1억원, 나눔의 집에 1000만원, 천주교 단체에 1억 5000만원 등을 기부했다. 자신처럼 부모없는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써달라는 의미였다.
2007년 2월에는 마이크 혼다 미국 연방하원이 주최한 미국 의회의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서 끔찍했던 과거사를 증언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생전 "짖밟힌 내 삶이 불쌍하고 억울해서라도 '내가 살아있는 한'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빈소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차병원 지하 1층 특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25일이며 장지는 나눔의집 추모공원이다.
[뉴스핌 Newspim] 황유미 기자 (hum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