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정치 상황과 관련해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는 여기까지다, 앞으로는 내리막길밖에 없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안 의원은 14일 '뉴스핌 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 스토리'에서 "지금 전 세계는 빛의 속도로 가고 있는데 우리는 내부에서 싸우느라 멈춰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안 의원은 "우리나라 과제가 정말로 많다"며 "일종의 폭탄돌리기 내지 수건돌리기 때문에 해결 안 하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도적인 해법으로 서로를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찾아서 그것에 대해 서로 합의를 이루는 게 우리나라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 아닌가"라고 제안했다.
안 의원은 "좋은 사회는 좋은 달리기대회하고 같다"며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 정직한 사람이 속아서 손해 보지 않는 사회, 그리고 줄 잘 선 사람이 새치기 당하지 않는 사회, 정말 이런 사회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난 안 의원은 부산고,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의사 면허를 취득했다. 그는 1988년 국내 최초로 컴퓨터 백신을 개발했고, 1995년 안철수연구소(안랩)를 설립했다.
안 의원은 2012년 9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정치권에 입문했고,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국민의당 대표를 맡았다. 안 의원은 지난 2013년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으며, 지난해 4월 10일 치러진 22대 총선에서 4선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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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사진=뉴스핌 DB] |
다음은 안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김가희 기자, 이하 김 기자) 한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티션 스토리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진행을 맡은 뉴스핌 김가희 기자입니다. 오늘 함께 진행해 주실 최연혁 교수님 모셨습니다.
-(최연혁 교수, 이하 최 교수) 네 안녕하십니까?
-(김 기자) 오늘은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의원님 안녕하세요.
-(최 교수) 청년들의 아주 압도적인 열광과 지지를 바탕으로 해서 정치에 입문하셨습니다. 저는 기억하는 것이 2011년 상황 속에서 50%의 지지율을 가지고 계셨던 분이 5%의 지지율을 가지고 계신 분께 양보하셨어요.
▲(안철수 의원, 이하 안 의원) 그게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최 교수) 그렇습니까?
▲(안 의원) 2011년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제가 카이스트 교수를 하는데 서울대 총장님께서 직접 스카우트 제의를 하셨습니다. 학교를 옮겼죠. 카이스트에서 서울대로 옮겼습니다. 근데 두 달 정도 됐는데 갑자기 신문에서 서울시장 여론조사를 돌리는데 저를 집어넣은 겁니다. 그러면 (제가) 정치한다고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이 막 이렇게 왔는데, 그때는 제가 정치할 생각이 제로(Zero)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출마 선언도 안 했는데 처음 나와서 불출마 선언을 한 겁니다. 그 당시에 박(원순) 시장이 와 있었었고요. 그게 다입니다. 사실. 그 이후로 2012년 9월까지 1년 이상을 서울대 교수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제가 정치를 2011년부터 했고 박원순한테 양보했고 이렇게 잘못 알고 계시는 분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그거를 아예 그때 좀 공개적으로 알려서 오해를 풀었으면 하는 후회는 있습니다만, 사실은 그런 겁니다. 저는 정치할 마음이 전혀 없었고 그건 정말 양보도 아니고 저는 정치 안 한다는 선언이었고요. 서울대에서 월급 받는 교수였습니다. 1년 내내. 그러니까 사실은 2011년은 정치한 해가 아닙니다.
-(김 기자) 정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신 게 2012년이라고 보면 될 거 같은데.
▲(안 의원) 예 그렇습니다. 2012년 9월 19일입니다.
-(김 기자) 지금은 어느덧 4선 중진 의원이 되셨어요. 그때랑 비교해 보셨을 때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뭘까요?
▲(안 의원) 달라진 점이 있다면 경험이 많이 쌓였습니다. 그래서 정치를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구나 이런 걸 알았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어떤 개혁을 하려고 한다면 처음부터 개혁안을 꺼내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회 같은 그런 경우는 아주 급격하게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대부분의 현대 사회에서의 개혁이라는 게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에 우선 해야 될 일이 우군을 확보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의료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죠, 그러면 처음부터 '2천 명 증원' 이렇게 하면은 실패합니다. 그게 아니라 처음에 우리나라 의료가 좋은데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 번째 지금 지방 의료가 자꾸 쇠퇴한다. 두 번째 필수 의료 의사들이 자꾸만 부족해진다. 세 번째 의사를 돌보지는 않지만, 치료 약을 개발하거나 백신을 개발하는 의사 과학자를 키우는 데가 없다. 그래서 정부에서 이런 예산을 들여서 지방의료원을 짓고 그다음에 의사 과학자를 키우는 새로운 과를 신설하고 그다음에 필수 의료를 하는 사람들의 수가를 올려주겠다, 이렇게 말하면 우군들이 굉장히 많아지겠죠. 사실 국민 중에서 그거 싫어하는 사람 없을 겁니다. 그렇게 해놓고 나서 의사 수를 여기에 적당하게 얼마 정도를 채워야 되니까 의사 증원이 필요하다, 이러면 저는 의사들도 반대 안 했을 거라고 봅니다. 그게 정치의 프로세스거든요. 저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사실은 솔직하게. 근데 이제 정치하면서 알게 됐던 게 처음에 우군을 확보하고 먼저 정치에서 솔선수범해서 투자하는 모습을 보여준 다음에 실제로 하는 개혁을 하는 게 개혁이 성공하는 길이구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근데 불행하게도 이번 정부에서 정말 잘못했던 점이 그런 과정들을 모르고 처음부터 숫자를 던진 거죠. 교육 개혁을 하려면 사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되는데 교육 개혁 처음 말이 뭡니까? 5세 입학. 그다음에 과학기술 연구개발비 할 때 어떤 문제가 있고 이렇게 우군을 확보하는 대신에 제일 먼저 던진 말이 뭡니까? 10% 삭감. 의료 개혁할 때 제일 처음 던진 말이 뭡니까? 2천 명 증원. 숫자부터 던지는 게 제일 안 좋은 정부 개혁입니다. 이런 점들을 알게 됐죠.
-(최 교수) 정치 처음에 들어오실 때는 정치 문외한으로 많은 사람들이 '정치를 너무 모른다'라고 지적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말씀 들어보면 상당히 베테랑의 모습이 보입니다.
▲(안 의원) 그래서 저는 감히 말씀드리지만 제가 처음에 인기가 하늘을 치솟았을 때 그때 서울시장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때 생각도 없었지만,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 그랬으면 같은 실수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들을 해봅니다.
-(최 교수) 그러면 정치를 다시 해보겠다고 결정하게 된 특별한 계기나 그런 것이 있었습니까?
▲(안 의원) 네. 원래 생각했던 서울대 교수로서 열심히 학생들 가르치고 그 일을 해야지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이제 제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1년이 지났는데 그게 꺾이지 않더라고요. 그러면서 저는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그때는 정말 정규의 길을 걸었으니깐요. 서울의대 나와서 석사 받고 박사 받고 그대로 교수하면서 이렇게 가는 길이 있었는데, '필요한 일이면 해야겠다. 그게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동안 배웠던 의학의 길을 포기하고 중소기업 사장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서울의대 그때 제가 퇴년, 그러니까 65세까지 정년을 보장받은 교수였었는데요. 그거 포기해서 사표 내고 정치의 길로 들어선 겁니다.
-(최 교수) 정치 신인에서 이제는 정치 베테랑의 모습이, 4선을 지금 하고 계시니까 말이죠. 그런 모습이 보이는데 본인의 비전이나 생각과 대한민국이 이 길로 가야 된다고 하는 과정과 원칙을 좀 소개해 주시죠.
▲(안 의원) 그전에는 돈이 많고 적고에 따라서 계층 구분이 됐죠. IT가 그걸 강화시키고 인공지능이 이걸 더 강화시킬 겁니다. 그런데 저는 좋은 사회는 좋은 달리기 대회하고 같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좋은 달리기 대회가 뭡니까? 우선 첫 번째는 모든 사람이 같은 출발선상에 서야 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는 경기가 시작되면 거기에서 누구 잡고 이런 반칙하는 사람들은 탈락시키고 벌을 줘야 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로 골인 지점을 통과하고 나면 1등한테만 상을 주면 안 됩니다. 그 공헌도에 따라서 골고루 공평하게 공정하게 상을 줘야 되죠. 그다음에 다섯 번째로 그날 하필이면 몸살이 났어요. 뛸 수가 없어요. 그럼, 그 사람은 양호실에 보내서 잘 돌봐줘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좋고 공정한 사회가 바로 그런 사회라고 봅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 정직한 사람이 속아서 손해 보지 않는 사회, 그리고 줄 잘 선 사람이 새치기당하지 않는 사회, 정말 이런 사회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또 골인한 다음에도 자기가 땀 흘린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회, 재도전할 기회를 주는 사회, 그다음에 사회적인 약자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돌봐줄 수 있는 그런 사회, 복지 시스템을 말하겠습니다만, 그런 사회가 저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이고 공정한 사회고 제가 만들고 싶은 사회거든요. 저는 그런 사회를 만들려고 한다면 사실은 이렇게 놓고 보면 돌아가서 이야기인데 제가 정치하면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 3가지가 국가가 부강하고 국민이 행복하고 국민이 안전한 겁니다. 근데 이거는 사실은 말은 쉽지,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굉장히 복잡하거든요. 그래서 저 같으면 법을 만드는 입법부이기 때문에 이런 법률에 대해서 여러 가지 우선순위라든지 잘못된 점이라든지 좀 늦었지만 지금 고쳐야 될 부분들, 이런 부분들을 계속 정교하게 다듬고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최 교수) 우리나라에 넘어가야 할 산은 과거에 대한 정리가 어떻게 돼야 될지. 다시 말해서 친일이다, 친중이다. 또 우리나라의 정부는 과연 언제 시작했느냐, 국가 설립은 언제냐, 이거 가지고 사실 논의가 많죠. 그 말씀 잠깐 들어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외교 어떻게 풀어내야 될까요?
▲(안 의원) 외교를 넘어서는 질문을 해 주셨는데요. 좌우로 분열이 돼 가지고 이것 아니면 이거다 이렇게 해서 이게 국민 분열에 완전히 근본 원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저는 중도주의적인, 그리고 또 합리적인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국가라고 한다면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국민이 있어야 되고 그다음에 영토가 있어야 되고 주권이 있어야 됩니다. 근데 우리 임시 정부는 국민도 있고 영토도 있습니다만, 주권이 없지 않았습니까. 이게 3개가 다 된 게 1948년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우리가 건국하는 과정은 다른 나라와 달리 처음 시작을 임시 정부부터 시작했고, 근데 그때는 국가라고 할 수는 없죠. 사실은. 우리가 주권이 없으니깐요. 그때부터 시작해서 열심히 노력해서 결국은 1948년에 완성을 했다. 그게 사실은 저는 중도적인 시각이라고 봅니다. 그게 사실은 국민 통합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국민이 통합이 안 된 나라가 위기를 극복하는 경우를 못 봤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국민이 통합될 수 있는 그런 방법들을 지식인들과 일반 국민들이 다 같이 모여서 합의해서. 우리 지금 적은 외부거든요 사실. 바로 북한이 있고 중국이 있고 러시아가 있는데 그게 3대 해킹 강국입니다. 바로 거기에 우리나라가 붙어 있어서 굉장히 위험합니다. 지금 화약고입니다. 거기다가 미국 같으면 트럼프 2기 체제 들어서면서 관세들 그다음에 일본 그다음에 우리나라를 치고 올라가려고 하는 막강한 인도부터 해서 엄청나게 많은 나라들이 우리 경쟁인데 내부에서 계속 이렇게 싸워서 되나 싶습니다. 중도적인 해법으로 서로를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찾아서 그것에 대해서 서로 합의를 이루고 저는 그게 우리나라가 앞으로 좀 더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아닌가. 지금 전 세계는 빛의 속도로 가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내부에서 싸우느라고 그냥 멈춰 있나요. 뒤로 가고 있나요. 지금 거의 그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대로 가면은 여기까지다 우리나라는. 앞으로는 내리막길밖에는 없다. 거기서 굉장히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최 교수) 상황이 되신다면 다시 한번 국가 경영을 위해서 한번 큰마음 먹고 해보실 용기가 있으십니까.
▲(안 의원) 우리나라 과제가 정말로 많습니다. 일종의 폭탄돌리기 내지 수건돌리기 때문에 해결 안 하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실은 국민연금. 욕을 안 들으려고 그냥 미뤄둔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해법은 있습니다. 이런 것들부터 시작해서 욕을 듣더라도 이제 해결해야 된다, 이런 게 제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우선은 정체돼 있는, 거의 0%로 떨어지는 성장률. 저는 올릴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사실은 초격차 기술이라고 해서 1, 2등이 격차가 없을 때는 뒤바뀔 수 있고 이익도 별로 안 나지만 1, 2등이 격차가 아주 심해서 초격차가 되면 여기서 이익도 많이 나고 일자리도 많이 만들고 나라가 부강할 수 있고 이게 지금까지는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였지만, 점점 포텐셜이 없어지고 있거든요. 다른 부분에서 찾아야지만 성장이 가능하고요. 7개 정도 제가 지금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또 지금까지 우리가 너무나 빨리 달리다 보니까 주위 동료가 쓰러져도 일으켜 세우지 못하고 이러면서 지금까지 왔거든요. 대한민국이. 그러면 지금부터는 이제 모순을 고쳐야죠. 연금도 마찬가지고 노동 개혁도 마찬가지고 이런 개혁 이슈가 뒤에 또 있는 셈입니다. 순전히 저는 정치의 잘못이라고 보는데 옛날에 국민 통합이라는 말이 필요가 없지 않았습니까? 박정희 대통령 때 잘 살아보세, 전부 다 모이고. 김대중 대통령 때 금 모으기 운동, 전부 다 모이고. 거기에 진보 보수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양쪽으로 나뉘어서 거의 두 나라가 돼 버린. 사실 정치의 가장 중요한 것이 국민통합인데요. 그전에는 대선이 끝나고 나면 아무리 51 대 49라고 하더라도 나머지 49%가 승복하고 잘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까? 사실 김영삼 대통령 때도 하나회 척결부터 해서 굉장히 많은 개혁들이 다 국민통합 때문에 저는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을 다시 복원하는 게 우리 아이들에게 떳떳하기 위해서라도 꼭 해야 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김 기자) 정계 은퇴 후에는 안철수라는 정치인이 어떻게 기억됐으면 좋겠다 하는 게 있으신가요.
▲(안 의원) 나름대로 저는 사회를 위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사회 구성원의 한 일원으로서 제 역할을 하려고 살았었고요. 그리고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어느 정도 안랩이 성공한 다음부터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정말로 중요한 제 삶의 가치였습니다. 자기 재산 나눠 드리는 거, 형편이 어려운 분께. 그다음 전쟁에 나갈 때 로마가 유지된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로마의 귀족들이 최전선에 나가서 자기 목숨을 바쳤거든요. 그런 것처럼 저도 대구 코로나 사태 때 제일 먼저 달려가서, 그때는 사람들이 면역이 없어서 사실은 죽을 수 있었던 그런 때인데 저도 거기 나갔거든요. 나름대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위해서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정도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최 교수) 대한민국 청년들 그리고 많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통합의 메시지를 많이 내주시고 그렇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안 의원) 예 감사합니다.
-(김 기자) 오늘 안철수 의원님 모시고 장기간 얘기 듣는 시간 가져봤는데요. 말씀 주신 공정한 대한민국 만들기 위한 활발한 의정 활동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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