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미국의 조선업은 한국의 도움과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2024년 11월 7일)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알루미늄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 (2025년 2월 10일)
"미국에 수입되는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오는 4월 2일께 내놓겠다" (2025년 2월 16일)
'예고 없는 새벽'에 외신을 통해 전해져 오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하나하나에 우리나라 국가기간산업이 출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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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블룸버그] |
자동차·철강 등과 같이 '울고 싶은' 산업과 조선업과 같이 '물 들어온' 산업이 공존하면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의 촉각은 온통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향해 있다.
대통령 취임 전부터 예고했던 '알려진 위기'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와 기업의 흥망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발표를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쏟아내며 재계의 긴장감은 최고조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및 구속 사태로 트럼프 행정부와 국가 간 협상에 나설 정부 파트너가 없는 상황에서 주요 기업들은 '처절한 각자도생'의 길에 나섰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20대 그룹 대표급 인사들은 오는 19일부터 20일까지(현지시간) 양일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대미 통상 아웃리치' 활동을 시작한다.
최 회장과 함께 방미 길에 오르는 재계 인사는 조현상 HS효성 부회장, 김원경 삼성전자 사장, 유정준 SK온 부회장, 이형희 SK 수펙스 커뮤니케이션 위원장, 성김 현대자동차 사장, 윤창렬 LG글로벌전략개발원 원장, 이계인 포스코인터내셔널 사장, 임성복 롯데지주 커뮤니케이션 실장, 주영준 한화퓨처프루프 사장, 이나리 카카오 브랜드커뮤니케이션 위원장, 김민규 신세계 부사장, 구동휘 LS엠앤엠 사장, 스캇 박 두산밥캣 부회장, 채선주 네이버 대외·ESG 정책 대표, 허진수 SPC 사장, 이문희 한국가스공사 본부장,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의 회장,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등 2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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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25년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참석자들과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구광모 LG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최 대통령 권한대행. [사진=기획재정부] |
대미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 반도체, 철강, 조선, 배터리 등 국가 기간산업급 기업 대표자들이 모두 참석한다.
재계 경제 사절단은 방미 중 백악관 고위 당국자와 의회 주요 의원들과 만나 관세를 비롯한 통상 정책을 논의하고, 양국 간 전략적 협력 의제와 대미 투자 협력을 위한 액션플랜을 소개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 ▲조선 분야 협력 ▲완성차 및 부품 제조 시설 투자 ▲미국 차세대 원전 개발과 SMR 협력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위한 공동 연구·개발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대한상의는 "한국은 트럼프 1기 'Buy America' 약속을 적극 실천한 대미 투자의 모범국가이자 우등 기업임을 적극 강조할 예정"이라며 재계 경제 사절단의 비장한 각오를 전했다.
이와 별도로 개별 기업은 이미 총수가 총력전에 나선 상태다. 정의선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이 지난달 20일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에 100만 달러(한화 약 14억 7천만 원)를 기부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기부한 것은 처음으로 GM, 포드, 토요타 등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들의 기부 행렬에 같은 액수로 동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또한 최근 방미 길에 오른 정 회장은 지난 13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 프로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의 골프 라운드에 동행했다.
트럼프 주니어는 트럼프 2기 정권의 '실세'로 평가받고 있다. 정 회장은 직접 골프 라운드에 나서지는 않고 트럼프 주니어 등과 지속적으로 대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두 사람은 다이닝룸에서도 상당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말 미국 조지아주에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건설하고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미국 현지화에 나선 전략이다. 현대차그룹 계열 철강사인 현대제철도 미국 남부 현지에 제철소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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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로이터=뉴스핌]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2019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한국 경제인과의 간담회에 참석한 모습. |
백악관은 지난 12일 보도 참고자료를 통해 "트럼프 정부 1기 때의 철강·알루미늄 관세로 미국 전역에서 투자 붐이 일어났다"며 "최근 현대제철이 미국에 제철소 건설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발표가 있었다"고 밝혔다.
관세 전쟁의 선포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성공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는 '노골적인' 자평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 발언과 발표로 미국 기업들의 불확실성도 높아졌지만 대미 수출에 생존이 걸린 한국 기간산업이 기로에 섰다는 평가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결국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이끌려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언제까지 트럼프의 발언 하나하나에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대응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최소한 국내 정국이 빨리 안정화되는 것이 절실하다"고 토로했다.
kims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