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재창 정치전문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책갈피 달러 밀반출 대책'과 '환단고기' 발언이 잇따라 논란에 휩싸였다. 책갈피 달러 고액 밀반출을 묻는 과정에서 제대로 답변을 못 해 질타를 받은 공기업 사장이 이 대통령의 지시를 반박하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환단고기 발언은 야당의 집중적인 공격 소재가 됐고, 대통령실이 해명까지 했다. 두 발언의 공통점은 생방송으로 진행된 정부 업무보고 과정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책갈피 달러 밀반출 논란은 이 대통령이 지난 12일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서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에게 고액권을 책장 사이에 끼워 숨기는 방식으로 거액의 외화를 빼돌릴 수 있는지를 묻는 과정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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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이 12일 오후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
이 대통령은 "1만 달러 이상은 해외로 가지고 나가지 못하는데 수만 달러를 100달러짜리로 책갈피처럼 (책에) 끼워서 (해외로) 나가면 안 걸린다는데 실제 그러냐"고 물었다. 이 사장이 "지폐 100장이 겹쳐 있으면 확인이 가능하지만 한 장씩 책갈피처럼 꽂혀 있으면 현재 기술로는 발견이 좀 어렵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안 걸린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책을 다 뒤져보라"고 전수 조사를 지시했다.
외화 밀반출 문제를 짚는 과정에서 이 사장이 "저희는 주로 유해 물질 검색이다. 업무 소관은 다르지만 그런 것을 이번에도 적발해 세관에 넘겼다" 등의 답변을 반복하자 이 대통령은 "참 말이 기십니다", "지금 다른 데 가서 노시냐"고 질타했다.
이 사장은 14일 SNS에 올린 글에서 "불법 외화 반출(적발)은 세관의 업무이고 칼, 총기류, 라이터, 액체류 등 위해 품목 검색이 인천공항공사의 업무"라며 "위해 물품 검색 과정에서 불법 외화 반출이 발견되면 세관에 인계한다"고 적었다.
이 사장은 이 대통령의 전수 조사 지시에 대해 "대통령이 해법으로 제시한 100% 수화물 개장 검색을 하면 공항이 마비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걱정스러운 것은 온 세상에 책갈피에 달러를 숨기면 검색되지 않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라면서도 "세관과 좋은 방안이 있는지를 협의하겠다"고 했다.
이 사장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지) 3년씩이나 됐는데 업무 파악을 정확히 못하고 계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해외 공항 사업을) 저보다 아는 게 없는 것 같네요"라고 질책한 데 대해 "(업무보고) 이후 많은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며 "이 대통령의 저에 대한 힐난을 지켜보신 지인들에게는 아마도 '그만 나오라'는 의도로 읽힌 듯하다"고 했다.
이 사장은 이집트 후르가다 공항 사업과 관련한 이 대통령의 수요와 전망 등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이 사장은 이날 올린 글에서 "아직 입찰 공고조차 나오지 않은 초기 단계라 구체적인 답변을 드릴 수 없었다"며 "입찰이 나오지도 않은 사업에 대해 수요 조사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저 역시 관련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에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수법을 공개하고 이를 막겠다는 담당 기관장의 발언까지 들었기 때문에 오히려 범죄 예방 효과가 더 크다"면서 이 사장을 망신 준 것이란 지적에 대해선 "야당 출신이라고 해서 공세적인 자세를 취한 것이 아니며, 정상적인 소속 기관에 대한 질의응답이었다"고 했다.
야당은 이 대통령을 겨냥한 공세에 나섰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제 이재명 대통령이 책 속에 숨겨서 외화 밀반출 못하게 항공기 탑승자들의 책을 뒤지라고 했다"며 "일반 국민들 눈에는 신기하고 낯설겠지만, 그것은 이재명 경기지사 방북비용(판결에서 분명히 방북비용이라 했죠)을 쌍방울이 북한에 대신 준 대북송금 사건에서 외화 밀반출했던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자기 사건이니 잘 아는 것"이라며 일종의 자기고백이라고 주장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3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 대통령이 외화 밀반출을 예방하기 위해 공항에서 반출되는 책에 대한 전수조사를 지시했다"며 "뜬금없는 깨알 지시가 낯설다 싶었는데 외화를 책갈피처럼 끼워 밀반출하는 것은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때 쓰인 방식이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범행 수법 자백"이라고 했다.
환단고기(桓檀古記) 관련 발언은 지난 12일 교육부의 업무보고 과정에서 나왔다. 이 대통령은 이날 동북아역사재단의 업무 보고를 받던 중 "환빠 논쟁 있죠"라며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위서로 규정한 환단고기에 대해 물었다.
이 대통령은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역사 교육과 관련해선 '환빠' 논쟁이 있지요"라고 물었고 이에 박 이사장이 "잘 모르겠다"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환단고기 연구하는 사람들 보고 비하해서 '환빠'라고 부르잖나"며 "동북아역사재단은 특별히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고대 역사 연구를 안 하느냐"고 했다.
환단고기(桓檀古記)는 종교인이자 유사 역사가인 이유립이 1979년에 출간한 책이다. 단군 이전에 환국이라는 국가가 존재했고, 고대 한민족 영토가 한반도를 넘어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등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에 걸쳐 있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유립은 이 책이 고대부터 전해 내려오던 역사서 4권을 독립운동가 계연수가 1911년 저술한 책이라고 주장했지만 역사학계는 환단고기가 이유립에 의해 창작·수정된 위서라고 보고 있다.
야권에서는 이 대통령이 학계에서 '위작'으로 판단한 환단고기를 믿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관점의 차이라고 하는 건 백설공주가 실존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은혜 원내정책수석대표는 지난 14일 "환단고기는 신앙의 영역이지 역사가 아니었다. 그래서 학계에서 위서로 규정된 거다"라며 "사이비 역사를 검증 가능한 역사로 주장할 때 대화는 불가능해진다"고 했다.
한동훈 전 대표도 이날 이 대통령을 겨냥해 "무식한 권력자가 전문가와 국민을 가르치려 들 때 사고가 터진다"며 "이 대통령의 '환단고기' 사태는 '논란이 아닌 것'을 '의미 있는 논란이 있는 것처럼' 억지로 만들어 혼란을 일으킨 이 대통령의 무지와 경박함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 말대로라면 '(지구가 구체가 아니라는) 지구평평설' '(인류가 달에 가지 않았다는) 달착륙 음모론' 같은 것들도 논란이 있으니 국가기관이 의미있게 다뤄줘야 하는 것이 된다"고 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지난 13일 "환단고기는 위작이다. 1911년 이전 어떤 사료에도 등장하지 않고, 근대 일본식 한자어가 고대 기록에 나오며, 고고학적 증거와 정면 충돌한다"며 "환단고기가 역사라면 반지의 제왕도 역사"라고 꼬집었다.
대통령실은 논란이 확산되자 해명에 나섰다. 김남준 대변인은 지난 14일 브리핑에서 "그 주장에 동의하거나 그에 대한 연구나 검토를 지시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다양한 문제의식이 있고, 그런 것들을 잘 알고 있고, 그런 것들을 포함해서 올바르게 된 국가 역사관을 확립하고, 수립하고, 연구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 중 하나였다고 봐주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환단고기도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미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사실 거기에 대한 입장은, 국가의 역사관을 연구하고 그 역사관을 수립하는 기관에서 답을 내놓아야 될 부분이라고 보여진다"고 했다. 김 대변인은 이어 "명확한 답이 나왔는지, 또 반대 입장에서는 충분한 답이 됐는지, 기관에서 어떻게 답변을 내놨는지 국민들이 보고 평가하실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국정 방향과 구상을 국민에게 설명하는 생방송 업무보고는 송곳 질의와 질타로 정부의 기강을 다잡고 국정 장악력을 높이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다만 업무 보고의 본질과 거리가 있는 일부 발언이 야당의 공세를 부르는 등 정치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본래의 취지를 일부 가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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