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정성훈 기자 = 한국 사회의 플랫폼 논쟁은 늘 비슷한 결말을 맞는다.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해 소비자의 선택을 넓히고, 기존 산업의 경계를 흔들면 초기에는 환영과 기대가 따른다. 그러나 갈등이 본격화되는 순간, 정책의 방향은 어김없이 한쪽으로 기운다. 바로 '규제'다. 규제는 설계나 조정과 같은 긍정적인 방향이나 아닌, 차단하고 금지하는 부정적인 방식으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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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부장 정성훈 |
최근 논란이 된 비대면 진료 플랫폼 규제는 이 오래된 공식이 깨지지 않음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정부와 국회는 플랫폼이 의료 생태계를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일부 우려는 타당하다. 의료는 다른 산업보다 공공성과 안전성이 중요한 영역이다. 그러나 문제는 접근 방식이다. 플랫폼의 구조적 문제를 정교하게 들여다보기보다, 플랫폼이 개입하는 행위 자체를 위험 요소로 규정하는 순간, 논의는 생산성을 잃는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단순히 '허용이냐 금지냐'가 아니다. 플랫폼이 의료 전달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가 중개이고 어디서부터 개입인지, 책임은 어떻게 부과할 것인지에 대한 설계가 핵심이다. 하지만 지금의 논의는 이런 질문을 건너뛴 채 곧장 결론으로 향한다. 제한, 겸업 금지, 차단 등등등. 언제나 봤던 익숙한 결말이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2019년 '타다 사태'가 그랬다. 새로운 이동 서비스가 등장했고, 소비자 만족도는 높았다. 기존 택시 산업과의 갈등이 커지자 정치권은 조정이나 설계 대신 금지를 선택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혁신은 멈췄고, 글로벌 모빌리티 경쟁에서 한국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이후 남은 것은 규제를 피해간 변형 서비스와 더 복잡해진 시장 구조였다.
플랫폼 규제에서 우리가 반복적으로 놓치는 것은 플랫폼의 본질이다. 플랫폼은 '기술'이 아니라 '연결'이다. 공급자와 수요자를 효율적으로 잇는 구조다. 고객편의나 가격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플랫폼은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연결이 아닌 어떤 규칙 아래에서 연결되느냐다. 규제의 역할은 연결을 끊는 것이 아니라, 연결의 방식을 통제하는 데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가장 손쉬운 해법을 택해왔다. 그냥 멈추는 것이다.
해외 주요국의 접근은 다르다. 플랫폼을 제도권 밖으로 밀어내기보다, 제도 안으로 끌어들인다. 투명성 의무를 부과하고, 알고리즘 책임을 묻고, 이해관계자 간 힘의 불균형을 조정한다. 물론 시간이 걸리고, 행정 비용이 크고, 정치적으로도 부담이 된다. 그럼에도 그 길을 택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혁신을 멈추는 순간 경쟁력도 함께 멈춘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플랫폼 규제는 늘 뒤늦다. 충분히 커진 뒤에야 문제를 발견하고, 설계가 아닌 처벌로 대응한다. 그러다 보니 규제는 산업을 바로잡는 도구가 아니라, 사후 제재 수단으로 기능한다. 플랫폼 기업은 위축되고, 소비자는 선택지를 잃으며, 시장은 경직된다. 결국 누구 하나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정부가 정말 플랫폼의 폐해를 우려한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금지법'이 아니다. 플랫폼이 허용되는 영역과 금지되는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고, 그 경계를 넘었을 때 어떤 책임을 지는지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일이다. 규제는 혁신을 멈추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혁신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장치다.
플랫폼은 죄가 아니다. 문제는 늘 뒤늦은 개입, 단편적인 판단, 설계 없는 규제였다. 타다 이후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만약 이번에도 같은 방식의 결론을 내린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타다 금지법'을 만들어놓고 몇 년 뒤 같은 후회를 반복하게 될지 모른다. 플랫폼을 멈출 것인가, 규제를 진화시킬 것인가. 이제는 선택해야 한다.
jsh@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