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올림픽 성화가 꺼진 자리에 또 다른 성화가 타올랐다. 50년 역사를 맞은 제14회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패럴림픽이 7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베로나 아레나에서 열린 개회식을 시작으로 열흘간의 레이스에 들어갔다.
이번 대회는 개막 직전까지 스포츠 외적인 변수가 끊이지 않았다. 러시아·벨라루스에 자국 국기와 국가 사용을 허용한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의 결정이 외교 갈등의 뇌관이 됐다. 개막 당일에는 중동 정세 악화로 이란이 결국 불참을 통보했다. 애초 조직위가 발표한 참가 규모는 56개국 612명, 역대 최대였으나 미국·이스라엘과의 무력 충돌 여파로 이란이 "선수단의 안전한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어 발을 빼면서 개회식 선수단 행진에서 이란 국기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개회식의 하이라이트인 선수단 입장 행진은 유례없이 차분했다. IPC에 따르면 참가국 55개국 가운데 실제 베로나 아레나에 선수단을 보낸 나라는 29개국에 그쳤다. 체코, 에스토니아, 핀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 7개국은 러시아·벨라루스의 복귀에 반발하며 개회식 보이콧을 선언했다. 프랑스와 영국은 정부 인사를 보내지 않는 선에서 거리를 뒀고 독일장애인체육회(DBS)도 자체 판단으로 개회식을 건너뛰었다.
베로나 아레나와 각 경기장 사이의 물리적 거리, 유럽 각국의 보이콧 움직임이 겹치면서 트랙 위에는 선수 대신 자원봉사자들이 각국의 국기를 들고 나섰다. 공식 기수로 뽑힌 선수들은 사전에 촬영한 영상을 통해 전 세계 시청자와 얼굴을 마주했다.
알파벳 순서 15번째로 입장한 한국 역시 현장에서는 자원봉사자가 태극기를 들었다. 화면 속에서는 노르딕스키 김윤지와 휠체어컬링 이용석이 기수로 등장해 환한 미소를 보였다. 한국 선수단의 실제 행진은 스노보드 이충민과 알파인스키 박채이, 양오열 선수단장 등 최소 인원으로 꾸며 조용히 베로나의 성화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2014년 소치 대회 이후 12년 만에 국가 자격을 회복한 러시아는 자국 국기를 선두에 세우고 경기장으로 들어왔다. 크로스컨트리 스키의 아나스타시야 바기얀과 세르게이 시냐킨 등이 현장 행진에 직접 나서 보이콧을 선언한 유럽 국가들과 대비를 이뤘다. IPC는 지난해 9월 총회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정지했던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회원 자격을 복권했다. 두 나라는 이번 대회부터 다시 국기를 달고 출전하고 시상대에서는 국가도 울려 퍼지게 됐다.
선수단이 아예 오지 못한 국가의 입장 순서에는 자원봉사자 2명이 국기와 피켓을 대신 들고 나섰다. 우크라이나 국기가 트랙 위를 지날 때 아레나를 가득 메운 관중석에서는 유독 큰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전쟁의 상처를 안고 온 나라를 향한 연대의 박수만큼은 분명했다.
다소 한산한 관중석 분위기와 다르게 베로나 아레나는 화려한 장면으로 빛났다. 1976년 스웨덴 오른셸드스비크에서 첫 발을 뗀 동계패럴림픽 50년 역사를 되짚는 하이라이트 영상이 먼저 스크린을 채우며 반세기의 시간을 한 번에 꿰었다.
선수단 입장 과정에서는 이탈리아 일렉트로닉 그룹 메두사(Meduza)가 비트를 책임지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선수단 행진이 끝난 뒤에는 오른팔을 잃은 뒤 최첨단 생체 의수와 함께 무대에 올라선 DJ '미키 바이오닉(MIKY BIONIC)'이 공식 메인 테마곡 리믹스를 선보이며 이번 대회의 종목과 경기장을 소개했다. 장애를 딛고 무대 중앙에 선 그의 퍼포먼스는 패럴림픽이 지향하는 가치 자체를 압축해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번 대회에선 동계패럴림픽 사상 처음으로 두 도시에서 동시에 성화가 타올랐다. 밀라노 평화의 문과 코르티나담페초 디보나 광장에 설치된 두 개의 성화대가 함께 불을 밝히며 분열된 세상을 향해 '두 개의 불, 하나의 메시지'를 던졌다.
개회식을 마친 한국 선수단은 7일부터 본격적인 메달 사냥에 나선다. 한국은 파라 아이스하키를 제외한 5개 종목에 선수 20명을 포함해 임원과 스태프를 더한 총 56명을 파견했다. 한국 선수단의 목표는 금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획득해 종합 20위권 내에 진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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