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글로벌 증시를 이끌던 반도체 랠리에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투자자들의 쏠림이 극단으로 치닫는 가운데, 시장 내부에서는 "반도체 롱(Long)이 가장 붐비는 거래"라는 경고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19일(현지시각) 배런스에 따르면 뱅크오브아메리카(BofA)가 글로벌 펀드매니저 약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월간 설문에서 응답자들의 주식 비중은 사상 최고 수준으로 확대된 반면 현금 비중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사상 최고치 경신 흐름과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가 위험자산 선호를 자극한 결과다.
다만 이 같은 낙관론은 취약한 전제 위에 놓여 있다. 응답자들은 향후 12개월 내 이란 관련 지정학 리스크 완화,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를 핵심 시나리오로 반영하고 있었다. 시장이 사실상 지정학과 통화정책의 동시 완화를 선반영하고 있다는 의미다.
과밀 포지션에 대한 경고는 뚜렷하다. 응답자의 약 4분의 3은 '글로벌 반도체 롱 포지션'을 가장 붐비는 거래로 지목했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최대 리스크로 꼽은 응답 비중(약 40%)을 크게 웃돈다. 테일 리스크로는 신용 이벤트가 꼽혔고, 약 34%는 AI 및 하이퍼스케일러 기업을 그 진원지로 지목했다.
◆ 랠리 주도주 흔들…금리·유가 부담 확대
실제 시장 상승은 소수 종목에 집중됐다. 3월 말 이후 S&P500 상승분의 약 3분의 2는 초대형 기술주가 견인했다. '매그니피센트 세븐' 지수는 2분기 들어 18% 이상 상승했고,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 역시 3월 저점 대비 약 50% 급등했다.
그러나 흐름은 달라지고 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최근 3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사상 최고치 대비 약 9.8% 밀렸다. 인텔은 최근 1주일간 약 15% 급락했고, 마이크론도 단기 낙폭을 확대했다.
반면 소프트웨어 업종으로는 일부 자금 이동이 감지된다. 관련 ETF는 단기 반등세를 보이고 있지만, 연초 대비 수익률은 여전히 마이너스 구간에 머물러 있다.
매크로 환경도 부담을 키우고 있다.
3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5.17%를 돌파하며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10년물 금리 역시 4.6%대를 넘어섰다. 국제 유가는 배럴당 110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다. 금리 상승과 고유가는 고평가된 성장주에 직접적인 압박 요인이다.
BofA는 별도 보고서에서 반에크 반도체 ETF(SMH)가 "극단적 과매수 상태"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뚜렷한 고점 형성 없이 상승세가 이어진 만큼, 기술적 피로 신호가 확인될 경우 포지션 축소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과밀해진 반도체 포지션이 금리 상승과 고유가라는 매크로 압력과 맞물리며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정을 단순 차익실현으로 볼지, 아니면 과열 포지션 해소의 시작으로 볼지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시선은 엔비디아 실적 발표로 쏠리고 있다. AI 칩 수요에 대한 가이던스와 업황 진단이 반도체 랠리의 향방을 가를 핵심 변수로 지목된다.
kwonjiu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