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뉴스핌] 박정우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과의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60일 휴전 연장을 담은 양해각서(MOU) 체결에 속도를 내면서, 중동 산유국과 글로벌 해운업계가 기대와 함께 '이란만 더 대담해지는 것 아니냐'는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긴장 완화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핵·미사일 문제를 뒤로 미룬 단계적 합의가 향후 역내 분쟁에서 이란의 협상력을 오히려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맞물린다.
◆ 핵·미사일 뺀 반쪽 합의 우려
2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60일간 교전 중단과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하는 방안을 담은 합의안 초안에 미국의 이란 항구 봉쇄 해제와 함께 1000억 달러 규모의 동결 자금 일부 해제, 제재 완화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중동 국가들, 특히 이스라엘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현재 논의중인 양해각서 초안에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구속력 있는 조항이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이번 합의가 경제·군사적으로 압박을 받던 이란에 숨통을 틔워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안보내각을 긴급 소집해 대응책을 논의했으며, 향후 핵 협상 단계에서 이란의 핵 능력에 대한 관리가 느슨해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향후 2단계 협상에서 우라늄 농축 활동 기간, 20% 이상 고농축 우라늄 재처리 방식 등을 논의하는 후속 협상이 이뤄질 예정이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호르무즈 통행 재개와 핵 문제를 분리한 임시 봉합에 불과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 호르무즈, 명시적 협상 카드화
걸프 산유국들 역시 셈법이 복잡한 상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 아랍국가들은 에너지 시설에 대한 이란의 추가 공격을 막고 원유 수출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외교적 해법을 지지하면서도, 합의 이후 역내 힘의 균형이 이란에 유리하게 바뀌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미 해군 전력이 철수하거나 축소될 경우,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노골적인 협상 카드로 활용하며 역내 영향력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H.A. 헬리어 선임연구원은 WSJ에 "이란은 전에는 없던 강력한 지렛대(호르무즈)를 쥐고 전후 시대로 진입하게 됐다"며 "호르무즈 해협이 이제 명시적인 협상 카드가 됐다는 점이 걸프 아랍 국가들에겐 가장 큰 위험"이라고 진단했다. 이란이 핵 프로그램에 관한 구속력 있는 조항 없이도 제재 완화를 얻어내는 구조가 굳어질 경우, 향후 역내 분쟁에서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앞세운 '벼랑 끝 전술'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유가 떨어져도 물류 회복에 최소 4개월
시장에서는 단기 안도와 구조적 불확실성이 동시에 감지된다. 합의가 성사될 경우 전세계적 원유 공급 차질 우려는 완화되면서 유가에는 하방 압력이 걸릴 수 있지만, 실제 물류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WSJ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호르무즈 통행이 6월부터 점진적으로 회복된다는 가정 아래 국제유가(브렌트유)가 연말 배럴당 80달러대 후반 수준에서 형성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전쟁으로 이미 10억 배럴이 넘는 공급이 차질을 빚은 데다, 주요 생산·수송 시설의 피해가 커 유가 조정과 별개로 '에너지 프리미엄'이 당분간 글로벌 경제에 남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해운·보험 시장은 아직은 조심스럽게 관망 중이다. 일부 선박들이 이미 페르시아만에서 호르무즈 해협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선사와 화주들은 충분한 기간 동안의 안정이 확인되기 전까지 정상 운항을 재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캐나다의 원유 리서치업체 커머디티 콘텍스트의 로리 존스턴 대표는 WSJ에 "표면적으로는 돌파구처럼 보이지만, 세부 해석을 두고 입장이 갈리면 언제든지 다시 깨질 수 있는 합의"라며 "해운 운임과 보험료는 유가보다 훨씬 더디게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에너지 인프라 복구와 공급망 재조정에도 시간이 걸린다. 노르웨이 컨설팅사 리스타드 에너지는 전쟁으로 훼손된 에너지 관련 시설의 복구·복원 비용이 최대 58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UAE 국영 에너지기업 아드녹(ADNOC)의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인터뷰에서 "분쟁이 당장 타결되더라도 호르무즈 물동량이 전쟁 이전의 80% 수준을 회복하는 데 최소 4개월이 걸리고, 완전 정상화는 내년 상반기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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