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조민교 서영욱 기자 = 삼성전자 노동조합의 보상 요구를 둘러싼 논란이 고임금 대기업 노동운동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문제로 확산하고 있다. 기본 임금이나 고용안정을 넘어 성과급과 자사주 등 추가 보상을 둘러싼 갈등이 커지면서 기업 내부 근로자의 몫을 확대하는 데 따른 비용을 누가 부담하게 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현재 재직 중인 '인사이더'의 보상 수준이 계속 높아질 경우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커지고 신규 채용이나 협력업체 근로자 등 노동시장 밖 '아웃사이더'에게 간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업이 높아진 인건비에 대응해 신규 채용을 줄이거나 자동화·인공지능(AI) 투자를 확대하면 청년층의 대기업 진입 문턱은 더 높아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노동조합의 정당한 성과 배분 요구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대기업 노조일수록 기업의 경쟁력과 일자리, 협력업체를 포함한 산업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 생존권 넘어 '성과급 투쟁'…쟁의 범위 어디까지
13일 노동계와 학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부문의 보상 논란을 계기로 고임금 대기업 노조의 성과 배분 요구와 사회적 책임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 직원 1인당 평균 급여액은 1억5800만원이다.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고임금 사업장이다.
최근 삼성전자 DX부문 직원들이 주축인 삼성전자노동조합 동행은 DX 직원 1인당 자사주 1000주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기본 임금이나 고용안정이 아니라 기업이 벌어들인 성과를 어떻게 나눌지를 둘러싼 갈등이 노사관계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한 것이다.
현행 제도상 임금과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노사 간 주장의 불일치는 노동쟁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성과급 역시 지급 기준과 성격 등에 따라 임금이나 근로조건과 연결될 수 있어 노사 간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
쟁점은 노동조합의 성과급 요구 자체가 정당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고임금 대기업 근로자의 추가적인 성과 배분 요구가 어느 수준까지 지속 가능하냐는 데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3권을 충분히 보장하면서도 기업 경쟁력과 신규 일자리, 다른 근로자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 내부자 보상 높아질수록…청년에겐 높아지는 '취업 문턱'
더 큰 문제는 기업 내부의 보상 확대가 외부 노동시장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다.
개별 근로자 입장에서 더 높은 임금과 성과급을 요구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임금과 성과급 등 인건비 부담이 지속적으로 높아질 경우 신규 인력 채용이나 사업 투자 등 다른 비용과의 우선순위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액 연봉을 받는 대기업 내부자들의 보상이 계속 높아지는 것은 취업준비생 등 외부자 입장에서는 벽이 계속 높아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를 '회사의 출입문'에 비유했다. 그는 "회사를 하나의 집으로 비유하면 취업준비생들은 출입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내부자의 근로조건과 비용이 계속 높아지면 그 문이 점점 높아져 절벽처럼 느껴질 수 있다"며 "인사이더의 비용이 높아질수록 아웃사이더가 진입할 수 있는 장벽도 높아지는 효과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높아진 인건비가 자동화와 AI 도입을 촉진하는 요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
박 교수는 "인건비가 계속 높아지면 기업 입장에서는 원가 절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결국 신규 채용을 줄이거나 자동화와 AI·로봇 도입을 앞당기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대기업 근로자의 보상 확대가 곧바로 신규 채용 감소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기업의 채용 규모는 경기와 실적, 사업전략, 투자계획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성과급 역시 기업의 경영성과에 기여한 근로자가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성격을 갖는다.
그럼에도 내부자의 보상 수준이 지속적으로 상승할수록 기업이 신규 인력을 고용할 때 부담해야 할 비용 역시 높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 문제와 분리해 볼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대기업 성과는 '우리만의 몫'인가…협력업체와 격차도
대기업 내부의 보상 극대화가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더욱 부각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같은 산업 생태계 안에서도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협력업체 근로자 사이에는 임금과 성과보상에서 상당한 격차가 존재한다. 대기업의 경영성과가 완성품 기업 내부 구성원만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협력업체와 공급망의 기여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종선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성과급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도 많고 일자리가 없는 노동자, 불안정한 노동자도 많으며 최근에는 청년들도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대기업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고집하기보다 회사 전체와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어떤 선택이 바람직한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교수는 대기업의 성과를 내부 직원만의 몫으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의 성과에는 그 기업 내부 노동자뿐 아니라 협력관계에 있는 노동자들의 기여도 포함돼 있다"며 "자신들과 연관된 부품·공급망의 노동자들과 성과를 공유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 "성과 나눌 권리 있다면 지속가능성도 함께 고민해야"
전문가들은 노동조합의 정당한 보상 요구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전제한다. 다만 기업의 성과를 공유하는 대기업 노조라면 기업 경쟁력과 일자리, 산업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도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경영진뿐 아니라 종업원과 노조도 이해관계자로서 공동의 책임이 있다"며 "기업의 성과에 참여해 경영성과급을 받는다면 기업의 브랜드와 지속 가능성, 경쟁력에 대해서도 그만큼 책임이 따른다는 생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노조가 자기들만의 이해관계를 앞세워 청년이나 다른 이해관계자들과 벽을 쌓는다면 그 성과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도 생각해봐야 한다"며 "기업 성과를 공유하는 만큼 기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공동 책임이라는 정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대기업 노동운동의 성과를 '얼마나 더 받아냈느냐'만으로 평가하는 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이 만들어낸 성과를 정당하게 나눌 권리를 요구하는 동시에 그 기업이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여건과 협력업체를 포함한 산업 생태계까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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