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뉴스핌] 최헌규 베이징 특파원= 8월 7일 아침, 베이징을 출발한 비행기는 두 시간여만에 산시(陝西, 섬서)성 시안(西安)의 서쪽 셴양(咸陽)공항에 내려앉았다. 공항이 위치한 곳은 셴양시 웨이청(渭城)구다. 이름을 듣는 순간 익숙한 당(唐)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웨이청의 아침비가 촉촉히 대지를 적시고, 객사 주변 버드나무가 푸른빛을 더하는구나. 한잔 받으시게, 한잔 더 하시게. 양관으로 부임하면 누가 있어 벗하겠는가."
(渭城朝雨浥轻尘
客舍青青柳色新
劝君更尽一杯酒
西出阳关无故人)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주옥같은 송별 시 '원이를 안서로 보내며(送元二使安西)'다. 그 옛날 웨이청은 장안(서안) 서쪽 변경인 양관(가욕관·옥문관)으로 사람을 떠나보내는 이별의 장소였다. 이런 웨이청에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이 오가는 국제 공항이 들어서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셴양은 산시성의 성도인 시안(西安)의 서쪽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셴양의 서쪽에는 인구 300여만 명의 도시 바오지(寶鷄)가 위치해 있는데, 바오지는 3000년 연륜의 중국 4대 명주 서봉주(시펑주) 공장을 품은 문화·전통·역사의 도시여서 시안과 함께 유명하다.
병마용의 도시로 널리 알려진 섬서성의 성도 시안은 단순한 고도(古都)가 아니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찬란했던 한나라와 당나라 왕조가 번영을 일군 곳이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 셴양을 수도로 삼았고, 한나라와 수·당 시대에는 장안으로 도읍을 옮겨 한당성세를 꽃피웠다. 시안은 무려 13개 왕조가 수도로 삼은 곳이다.
예로부터 중국에선 이 일대 관중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고 했다. 지리적 조건으로 볼 때 장안(시안)의 동쪽에는 황허, 북쪽에는 황토고원, 남쪽에는 진링산맥이 둘러싸고 있어 천혜의 요충지였다. 풍부한 농업생산력을 바탕으로 군량을 확보하고 민심을 안정시키기에 적합했다.
시안 문화 및 백주 산업 탐방단의 안내원은 "진시황이 전국시대 여섯 나라를 무너뜨리고 최초의 통일제국을 세운 것도 이곳 시안을 근거지로 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진나라는 비록 14년 만에 무너졌지만 도량형과 문자 등을 통일하며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틀을 만들었다. 뒤를 이은 한나라는 수도를 장안으로 옮겨 400여 년간 번영을 이어갔다.
시안의 역사에는 왕조의 흥망성쇠가 켜켜이 쌓여 있다. 진시황릉과 병마용, 대안탑, 명대 성벽 등이 대표적인 흔적들이다. 특히 진시황릉은 일반적인 무덤이라기보다 하나의 거대한 산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능을 만드는 데 38년이 걸렸고 72만 명이 동원됐다니 당시 황제 권력의 힘을 짐작할 수 있다.
탐방단은 8월 8일 시안 동북쪽 지역인 린퉁구의 호텔을 출발해 화청궁(화청지)으로 향했다. 8월 시안 교외 넓은 들판에는 이 지역 특산 작물이라고 하는 석류나무가 빼곡히 심어져 있었고, 병마용과 화청지로 이어지는 관광 인프라도 흠잡을 데 없이 잘 갖춰져 있었다.
화청궁은 역사책 속의 궁궐이면서 현대 중국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1936년 장쉐량이 장제스를 이곳에서 체포한 이른바 '시안사변'이 벌어진 곳이다. 이 사건은 제2차 국공합작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됐고, 훗날 일본 패망과 중국 공산당 집권으로 이어지면서 중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꿨다.
밤에는 화청지 야외 무대에서 '인상 장한가(長恨歌)' 공연이 펼쳐졌다. 리산을 배경으로 한 화려한 조명과 음악 속에 당 현종과 양귀비의 러브스토리가 무대 위에서 재현됐다. 화려했던 당의 성세와 안사의 난, 그리고 두 사람의 비극적인 운명이 한 편의 대서사시로 이어졌다.
양귀비는 중국에서 '침어(서시)·낙안(왕소군)·폐월(초선)·수화(양귀비)'라는 4대 미인중 한 명이다. 꽃조차 스스로 부끄러워했다는 '수화(羞花)'의 미모다. 그러나 공연이 던지는 이면의 메시지는 미모와 권력, 부귀영화의 덧없음이었다.
중국의 많은 도시 중에서도 시안만큼 과거와 현재가 복잡하게 얽히고 교차하는 도시도 드물다. 3000년의 역사 고도, 인구 1300만 명이 넘는 시안의 도로에는 신에너지 전기차가 유난히 많아 보였다. 안내원은 비야디(BYD) 전기차 공장이 시안에 있다고 소개했다.
시안의 남쪽 장안구에는 단일 투자로 최대 규모 공장인 우리나라 삼성전자의 시안 반도체 공장도 자리하고 있다.
시안은 과거와 현재를 함께 품고,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도시다. 최근 시안은 중국 서북부의 반도체와 첨단 제조, 항공우주산업의 중심지로 빠르게 모습을 바꿔가고 있다. 탐방단의 일원인 IT기업 회장은 "고대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었던 시안이 첨단 산업의 '실크로드'를 건설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최근 '중국몽'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다름 아닌 한·당 성세를 다시 부활시키겠다는 국가 번영의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시안은 단순히 과거의 영광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아니라 현대판 한당성세 실현을 위한 실천장일지 모른다. 전통 왕조의 심장이었던 시안이 지금 미래 중국 번영의 중심 도시를 향한 변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베이징 특파원 chk@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