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김민정 특파원 = 빅테크의 인공지능(AI) 차입이 미국의 장기 금리를 높은 수준에 묶어두고 있다. 신용도가 높은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채권을 찍어내자 투자자들이 국채를 팔고 회사채로 옮겨가면서다.
블룸버그통신은 17일(현지시간) 'AI가 국채 금리를 밀어 올리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투자자와 애널리스트들을 인용해 이같이 전했다.
현재 미 국채의 장기 조달 비용은 25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위기가 아닌데도 매년 2조 달러 가까이 쌓이는 재정적자와 예상보다 견조한 경제, 이란 전쟁이 촉발한 물가 압력이 주된 배경으로 꼽힌다. 여기에 기업들의 AI 차입이라는 변수가 새로 더해졌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돈을 많이 빌리면 기업이 끌어다 쓸 자금이 줄고 금리가 오른다는 '구축효과'가 뒤집혔다고 분석한다. 밀어내는 쪽이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 된 것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알파벳이 최근 발행한 30년물 금리는 6.4%에 육박했다. 만기가 비슷한 국채보다 1.15%포인트 높은 수준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지난달 메타 플랫폼스와 연결된 데이터센터 자금을 대는 채권은 7.5%를 넘겼다. 신용도가 매우 높은 기업이 국채보다 훨씬 나은 조건을 제시하자 국채를 팔아 그 돈으로 회사채를 사는 흐름이 나타났다.
뉴버거버먼의 올루미데 오월라비 선임 포트폴리오매니저는 "새 발행 물량이 시장에 나오면 프리미엄이 붙는다"며 "국채를 팔아 회사채를 산다고 해서 국채가 싫다는 뜻은 아니다. 더 나은 기회가 있다는 뜻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운용하는 11억 달러(약 1조5500억 원) 규모 채권 펀드는 오라클과 메타, 알파벳 등이 발행한 채권을 사들였다.
◆ 국채 보유 줄이고 회사채 늘리는 투자자들
모닝스타에 따르면 미국 투자등급 채권에 투자하는 펀드들은 올해 국채 보유를 줄이고 회사채 평균 비중을 30%까지 늘렸다. 3년 만의 최고치라고 모닝스타는 밝혔다. 블룸버그는 연방정부의 주요 자금줄이었던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났다고 전했다.
올해 들어 투자등급 기업 전체가 발행한 채권은 1조5000억 달러에 육박한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1년 전보다 36% 늘어난 규모다. 이 가운데 대형 기술 기업들의 차입만 약 2000억 달러로, 미 재무부가 민간 투자자에게 순발행하는 국채의 약 25%에 해당한다고 노무라증권은 추산했다.
누빈자산운용의 토니 로드리게스 채권전략 책임자는 "정부든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든 그렇지 않은 기업이든, 지금 발행하는 쪽은 더 많은 차입자와 경쟁하고 있다"며 "따라서 금리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장기 금리 억제하려던 미 재무부, 셈법 꼬였다
이 흐름은 트럼프 행정부의 계획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장기 금리를 밀어 올리지 않기 위해 단기물 발행에 크게 의존해 왔다. 덕분에 10년물과 30년물 발행 규모는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바클레이스는 지난달 이 조치로 올해 국채 순공급이 약 1조2000억 달러에 그칠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해보다 4400억 달러 적은 규모다.
하지만 AI 채권이 그 빈자리를 메우고도 남았다. 바클레이스는 회사채 순공급이 4740억 달러 늘어날 것으로 봤는데, 상당 부분이 대형 기술 기업 발행분이다. 재무부가 줄인 물량보다 기업이 늘린 물량이 더 많은 셈이다.
금리에 미친 영향을 정확히 계산하기는 어렵고 추정치도 엇갈린다. 다만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이코노미스트들은 지난 14일 고객 노트에서 AI 차입이 "장기 국채 수요를 밀어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금리 상승에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회사채 발행 급증과 주택저당증권 발행 증가가 겹쳐 올해 10년물 금리를 약 0.3%포인트 끌어올렸다는 계산이다.
댈러스 연방준비은행도 지난 2월 보고서에서 같은 문제를 짚었다. 연구진은 AI 관련 투자등급 채권 발행 전체가 올해 약 3000억 달러에 이르면, 10년물 환산 기준 최대 3600억 달러의 신규 듀레이션 공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추산했다. 듀레이션은 금리 변화에 대한 채권 가격의 민감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만기가 길수록 커진다. 이는 미 국채 발행에서 나오는 듀레이션 공급의 약 8분의 1에 해당한다. 보고서는 대형 기술 기업이 기존 최대 발행자인 금융사를 밀어낼 경우 국채시장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도 분석했다.
노무라증권의 조너선 콘 미국 금리데스크 전략 책임자는 이를 재무부의 골칫거리로 봤다. AI 관련 기업의 장기 채권 공급이 늘면 재무부가 조달 비용 상승을 피하려고 자체 장기 발행 규모를 줄여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시나리오를 기본 전망으로 보지는 않으면서도 실제 가능성이 됐다고 말했다.
◆ AI 인프라 투자 지속…장기 금리 높은 수준 유지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JP모간의 전략가들은 2030년까지 AI 인프라 투자가 총 5조5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PGIM의 그레그 피터스 공동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블룸버그TV에 출연해 이 자금을 대기 위한 차입이 정책당국이 무엇을 하든 장기 금리를 높은 수준에 묶어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것이 바로 구축효과"라며 "우리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뱅가드그룹의 앨릭스 페인 선임 포트폴리오매니저는 AI 투자가 회사 내부 일일 논의에서 최대 화두가 됐다고 전했다. 그는 "AI는 지난 몇 년간 시장에서 가장 큰 이야기였다"며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는 AI 투자에도 부담으로 돌아온다. 회사채 금리는 국채 금리에 가산금리를 얹어 정해지기 때문에, 국채 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기업의 조달 비용도 함께 올라간다. AI 차입이 떠받치는 금리가 다시 AI 투자의 비용을 키우는 구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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