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고인원 기자=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벌이는 가운데 최근 미 해군의 순찰 강화로 이란의 해협 장악력이 상당 부분 약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란의 요구를 무시하고 미 해군의 보호 아래 오만 측 항로를 이용하는 선박이 크게 늘면서다.
CNN은 18일(현지시간) 선박 운항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최근 2주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액체 화물 운송의 80% 이상이 이란이 반대하는 오만 측 항로를 이용했거나 이 항로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선박의 트랜스폰더와 위성 데이터를 추적하는 해운정보업체 케이플러(Kpler)에 따르면 이들 선박은 유엔이 승인한 오만 측 항로를 이용하거나 위치추적 장치를 끈 채 운항하는 이른바 '다크 트래픽(dark traffic)' 방식으로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
이는 한 달 전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당시만 해도 오만 측 항로를 이용하는 선박은 사실상 없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자국이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오만 북부 해안을 따라 이동하는 선박 수십 척을 공격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당수 선박이 이란의 요구를 무시하고 미 해군의 보호를 기대하며 오만 측 항로를 이용하고 있다.
호마윤 팔락샤히 케이플러 원유 분석 책임자는 "이란이 적어도 부분적으로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것으로 점점 더 보인다"고 말했다.
◆ 선박 80% 이상 오만 항로로…이란 통행료 징수도 차질
선박들이 이란이 선호하는 항로를 피해 다니면서 이란의 통행료 징수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이란은 올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에 통행료를 부과했다. 이번 주 미국과 이란 간 양해각서(MOU)가 만료되면서 이론적으로는 이란이 다시 통행료를 징수할 수 있게 됐지만 실제 징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케이플러는 분석했다.
댄 피커링 피커링 에너지 파트너스 설립자 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이란이 요구하는 통행료를 중동 국가 대부분이 내고 싶어 하지 않고 실제로도 내지 않고 있다"며 "오만 항로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말했다.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는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을 동원해 페르시아만에서 원유를 빼내고 있다.
이들 유조선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뒤 오만만의 위험 지역을 벗어난 곳에서 고객사의 유조선으로 원유를 옮겨 싣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란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위치추적 장치를 수주 동안 꺼놓는 선박도 있다.
이 때문에 민간 선박 추적업체들이 실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물량을 과소평가하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반면 호르무즈 해협에 상당한 규모의 군사력을 배치한 미국은 민간업체보다 많은 선박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은 지난주 호르무즈 해협을 직접 통과하거나 해협을 우회해 운송된 원유가 하루 약 1500만배럴에 달했다고 밝혔다. 전쟁 이전 평균인 하루 2000만배럴에 상당히 근접한 수준이다.
◆ 트럼프 "美가 완전히 통제"…CNN "美도 완전 장악은 아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 같은 상황을 근거로 지난 17일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CNN은 미국이 해협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란의 선박 공격이 계속되고 있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운송량도 여전히 전쟁 이전 수준을 밑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란 역시 과거와 같은 수준의 통제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에는 힘이 실리고 있다.
피커링은 "이란의 목표가 해협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이었다면 애초부터 완전한 통제권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며 "이란의 목표는 억지력을 통해 자신들이 통제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받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 정부의 주장처럼 하루 1500만배럴에 달하는 원유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거나 우회해 운송되고 있다면 이란의 억지력과 해협 통제력은 한두 달 전보다 상당히 약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 이란·오만은 별도 협상…호르무즈 주도권 향방은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상황은 이란과 오만이 별도의 협상을 진행하면서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두 나라는 미국을 배제한 채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로운 항행을 복원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움직임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과 오만의 협상이 실제 원유 운송과 해협의 통제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앤디 리포우 리포우 오일 어소시에이츠 회장은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각국의 주장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면서도 "이란이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부분적으로 상실했다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말했다.
koinwo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