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정아 기자 = 잭슨홀 미팅을 전후로 반도체주가 조정을 받는 사이 2차전지주가 두 자릿수 반등에 성공했다.
미국이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전력망과 국가안보 차원의 핵심 장비로 격상하면서 새로운 정책 모멘텀이 붙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31일 교보증권은 이번 2차전지 반등에 대해 단순한 순환매보다 ESS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책 내러티브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최보영 교보증권 연구위원은 "이번 2차전지 반등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변화는 정책의 중심이 전기차 보급 확대에서 전력망 안정과 ESS 확대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배터리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정책과 새로운 시장이 동시에 만들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 21일부터 28일까지 반도체와 2차전지의 주가 흐름은 뚜렷하게 엇갈렸다. 삼성전자는 8.7% 하락했고 SK하이닉스도 4.5% 떨어졌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 7.7% ▲삼성SDI 19.5% ▲포스코퓨처엠 20.3% ▲에코프로비엠 11.9% ▲엘앤에프 29.0% 등 주요 2차전지주는 일제히 상승했다.
반도체 조정의 배경에는 금리와 AI 투자 부담이 자리 잡고 있다. 잭슨홀에서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물가에 대한 경계감을 높이고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미국의 9월 금리 인상 확률은 하루 만에 35.4%에서 55.7%로 상승했다. 금리 상승 우려가 성장주의 밸류에이션 부담으로 이어진 것이다.
AI 투자에 대한 시장의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알파벳은 대규모 AI 설비투자(CAPEX)로 올해 2분기 사상 처음 마이너스 잉여현금흐름(FCF)을 기록했고 메타의 FCF는 전년 대비 91% 감소했다. AI 수요 자체보다 투자한 자금을 언제 회수할 수 있을지가 새로운 변수로 부상하면서 기대가 높았던 반도체에서는 차익실현이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반대로 2차전지에는 미국의 ESS 정책 변화가 새로운 상승 재료로 등장했다. 미국은 지난 26일 벌크전력시스템(Bulk-Power System)에 대한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AI와 데이터센터, 첨단 제조업과 방산 생산 증가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의 중요성이 커진 가운데 외국산 전력장비 의존을 공급망과 사이버보안 문제로 보기 시작했다.
특히 규제 대상에는 변압기와 발전기뿐 아니라 배터리에너지저장시스템(BESS), 계통연계 인버터, 무정전전원장치(UPS), 관련 소프트웨어와 원격접속 기능까지 포함됐다.
과거 미국 배터리 정책이 보조금과 세액공제를 통해 자국 생산을 유도했다면 앞으로는 국가안보 위험이 있는 외국산 전력장비의 구매와 수입, 설치 자체를 제한할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구체적인 시행규칙은 향후 120일 안에 마련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미국 ESS 시장의 경쟁 기준도 가격과 원가에서 현지 생산과 공급망, 사이버보안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중국 업체가 압도적인 원가 경쟁력을 보유한 상황에서 미국 현지 생산능력을 갖춘 한국 배터리 업체의 상대적인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북미 ESS 시장에서는 이미 한국 업체들의 입지가 확대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북미 ESS 시장은 75.9GWh로 지난해 상반기 41.5GWh보다 83% 성장했다. 같은 기간 한국 배터리 2개사의 시장점유율은 13.9%에서 19.7%로 높아졌다. LG에너지솔루션의 점유율은 4.2%에서 13.6%로 세 배 이상 상승했다.
최 연구위원은 "미국 ESS 시장의 경쟁 기준이 가격에서 공급망과 현지 생산, 보안으로 넓어지고 있다"며 "앞으로는 미국에서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공급할 수 있는가 자체가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정책 기대만으로 2차전지주 상승세가 지속되기는 어렵다고 봤다. 향후 주가의 추가 상승 여부는 ESS 정책이 실제 수주 증가와 생산라인 가동률 상승, 분기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는지가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실적은 바닥을 통과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1분기 2078억원의 영업손실에서 2분기 1133억원의 영업이익으로 흑자전환했다. 3분기 영업이익 시장 컨센서스는 약 3059억원이다.
삼성SDI 역시 3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가 약 936억원, 4분기는 2219억원으로 이익 회복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됐다. ESS 판매 확대가 실적 추정치 상향의 핵심 배경으로 꼽혔다.
최 연구위원은 "향후 2차전지의 추가 상승 여부는 ESS 정책 기대가 실제 수주와 가동률 회복, 그리고 분기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는지에 달려 있다"며 "컨센서스대로 하반기 이익이 분기별로 개선되고 ESS 수주까지 확대된다면 이번 반등은 단순한 순환매를 넘어 실적 장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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