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조민교 기자 = 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CXMT)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따라잡는 데 걸리는 시간을 빠르게 줄이고 있다. 이전 세대 모바일 D램에서는 국내 업체와 수년의 개발 시차가 있었지만 차세대 LPDDR6에서는 격차가 수개월 수준으로 좁혀졌다.
삼성전자는 2019년 LPDDR5 양산에 들어갔고 CXMT는 2023년 말 같은 규격을 양산해 4년 이상 차이가 났다. LPDDR5X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022년 양산에 들어간 반면 CXMT는 지난해 양산을 시작해 약 3년의 시차가 있었다.
하지만 LPDDR6에서는 양상이 달라졌다. 삼성전자가 올해 1월 제품을 공개하고 SK하이닉스가 3월 개발 인증을 마친 가운데 CXMT도 같은 달 고객사 검증에 착수해 이달 양산을 공식화했다. 세대가 바뀔수록 국내 업체를 따라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4년에서 3년, 다시 수개월로 단축된 셈이다.
31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CXMT의 LPDDR6는 오는 9월 출시되는 샤오미 폴더블 스마트폰 '18 폴드'에 탑재될 예정이다. 중국 정부의 장기 지원과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 샤오미 등 자국 스마트폰 업체를 활용한 빠른 검증 체계가 CXMT의 추격 속도를 끌어올린 배경으로 분석된다.
◆ 정부 지원에 IPO '실탄'까지…R&D에 집중 투자
CXMT의 추격 속도를 높인 첫 번째 배경은 막대한 자금력이다.
CXMT는 2016년 안후이성 허페이 경제개발구 산하 투자기구의 출자로 출범했다. 현재도 허페이시 정부와 연계된 투자자들이 회사 지분 36.8%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이 반도체 자립을 국가 전략으로 추진하면서 장기간 대규모 투자를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 자본시장까지 새로운 자금줄로 가세했다. CXMT는 지난 7월 상하이 증시에 상장하면서 579억2000만위안, 약 86억달러를 조달했다. 올해 아시아 최대 규모 기업공개(IPO)다.
투자 방향은 기술 개발에 향하고 있다. CXMT는 공모계획에서 295억위안을 핵심 사업에 투입하기로 했다. 메모리 웨이퍼 양산라인 업그레이드에 75억위안, D램 기술 고도화에 130억위안, 차세대 D램 선행기술 연구개발에 90억위안을 배정했다. 생산량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 D램의 품질을 높이는 동시에 다음 세대 제품 개발에 자금을 집중하는 구조다.
◆ 샤오미가 바로 검증…중국 내수시장이 상용화 속도 높여
CXMT가 빠르게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또 다른 배경은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과의 긴밀한 협력이다. 반도체는 개발에 성공해도 실제 스마트폰에 넣어 속도와 전력 소모, 발열, 안정성 등을 확인하는 고객사 검증을 거쳐야 양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CXMT는 샤오미와 오포, 비보 등 대형 중국 스마트폰 업체를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어 이 과정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 LPDDR4X와 LPDDR5를 공급하며 쌓은 경험도 있다. 실제 CXMT의 글로벌 모바일 LPDDR 시장 점유율은 2024년 3.5%에서 지난해 6.8%로 높아졌고 올해는 10.5%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이번 LPDDR6도 같은 흐름이다. CXMT는 올해 3월부터 고객사에 샘플을 공급하며 검증을 진행했고 양산 직후 샤오미 신제품 탑재까지 연결했다. 개발한 제품을 자국 고객사를 통해 빠르게 검증하고 실제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구조가 상용화 기간을 단축시키고 있는 셈이다.
◆ 개발 속도 좁혔지만…수율·원가 경쟁력은 아직
CXMT가 LPDDR6 출시 시점을 앞당겼다고 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력을 곧바로 따라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도체 산업에서는 '개발 성공'만으로 제품 경쟁에 뛰어들었다고 볼 수 없다. 실제 사업에서는 이를 얼마나 싸고, 많이, 불량 없이 만들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대표적인 지표가 수율이다. 예를 들어 한 장의 웨이퍼에서 100개의 반도체를 만들었을 때 90개가 정상 제품으로 나오면 90개를 판매할 수 있지만, 60개만 정상이라면 같은 생산비를 들이고도 판매할 수 있는 제품은 크게 줄어든다. 제품 개발 시점이 비슷하더라도 수율이 낮으면 가격 경쟁력과 공급 능력에서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생산 공정에서도 차이가 남아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첨단 D램 생산에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활용하지만 중국은 EUV 장비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CXMT는 상대적으로 구형인 심자외선(DUV) 장비로 여러 차례 회로를 새기는 방식으로 이를 보완하고 있는데, 공정이 복잡해질수록 생산시간과 비용이 늘고 수율 관리도 어려워진다. 실제 세미애널리시스는 CXMT의 DDR5 비트당 생산비용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보다 30% 이상 높은 것으로 추산했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기술 추격 속도는 확실히 빨라지고 있다"면서도 "같은 제품을 만들어도 얼마나 높은 수율로, 낮은 비용에, 대규모로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에서 국내 업체와 아직 격차가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기술 격차를 유지하기 위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단순히 제품을 먼저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최신 공정을 적용해 성능과 전력효율을 높이고, 고객사와 개발 초기부터 검증을 진행해 시장 선점에 나서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LPDDR6 개발 과정에서 주요 시스템반도체 업체들과 조기 검증을 진행하고 전력효율을 이전 세대보다 약 21% 높였다. SK하이닉스 역시 최신 1c 공정을 적용한 LPDDR6의 데이터 처리 속도를 기존 LPDDR5X보다 33% 높이고 전력 소비는 20% 이상 줄였다.
CXMT가 신제품 개발 속도를 빠르게 끌어올리면서 국내 업체들이 기술 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의 경쟁은 누가 먼저 제품을 개발하느냐를 넘어 누가 더 높은 성능과 수율을 확보하고, 더 낮은 비용으로 안정적으로 대량 공급하느냐에서 갈릴 전망이다.
mkyo@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