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유럽중앙은행(ECB) 3대 주요 직책의 후임자를 결정하는 이른바 '그랜드 패키지'가 올해 말까지 유로존(유로화 사용 21개국) 국가들의 합의로 확정될 전망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유로존 각국 정부는 ECB 28년 역사상 최대 규모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번 지도부 개편을 맞아 최근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랜드 패키지' 대상 직책은 ECB 총재와 수석 이코노미스트, 집행이사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의 임기는 내년 10월, 필립 레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5월, 이사벨 슈나벨 집행이사는 12월까지이다.
특히 라가르드 총재의 경우 내년 4~5월에 실시되는 프랑스 대선 이전에 조기 사퇴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후보가 집권에 성공할 가능성에 대비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차기 ECB 총재 임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FT는 "이번 ECB 지도부 개편은 라가르드 총재가 차기 프랑스 대통령 선거 전에 ECB를 떠나기 위해 올해 말 안에 조기 퇴임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불가피해졌다"고 했다.
협상 내용을 잘 아는 한 유럽연합(EU) 외교관은 "목표는 연말까지 그랜드 패키지에 합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외교관도 "전략적 협의가 진행 중인 것은 사실"이라며 "결정해야 할 중요한 경제 분야 요직이 많다는 점을 모두가 알고 있다"고 했다.
현재 가장 강력한 ECB 차기 총재로 거론되는 인물은 스페인 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한 파블로 에르난데스 데 코스 국제결제은행(BIS) 총재와 클라스 노트 전 네덜란드 중앙은행 총재라고 한다.
에르난데스 데 코스 총재는 유로존의 금융 분야 전문가들로부터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올해 초 FT가 학계와 싱크탱크, 연구소, 주요 금융기관에 있는 이코노미스트 8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중 26%가 차기 ECB 총재로 에르난데스 데 코스 총재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네덜란드 중앙은행 등에서 30여년간 이코노미스트로 근무한 노트 전 총재는 24%를 얻어 2위에 올랐다.
제3의 후보가 깜짝 등장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싱크탱크 OMFIF의 데이비드 마시 회장은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프랑수아 빌르루아 드 갈로가 예상 밖의 ECB 총재 후보로 떠오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요아힘 나겔 독일 중앙은행(분데스방크) 총재도 관심을 나타냈지만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재직 중인 상황에서 ECB 총재마저 독일이 가져가는 상황은 전례가 없다는 점 때문에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독일은 ECB 수석 이코노미스트 직책에 더욱 관심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는 총재 다음으로 ECB에서 중요한 직책으로 평가된다.
FT는 협상 내용을 아는 세 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독일 내에서는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자인 마르쿠스 브루너마이어, 스탠퍼드대 교수 모니카 피아체시, 전 국제통화기금(IMF) 고위 경제학자 토비아스 아드리안 등이 차기 수석 이코노미스트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도 수석 이코노미스트 자리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는 프랑스 중앙은행 부총재 아녜스 베나시-케레와 현재 산탄데르 프랑스 기업·투자은행 부문 대표를 맡고 있는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석 이코노미스트 로런스 분을 후보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독일 정부의 입장을 잘 아는 세 명의 관계자는 "스페인 출신 총재와 프랑스 출신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조합은 베를린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역시 네덜란드 출신 총재와 독일 출신 수석 이코노미스트 조합에는 반대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라가르드 총재는 지난 10일 ECB 통화정책이사회를 마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내년 10월 임기가 끝나기 전에 ECB 총재직에서 물러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제 개인적인 일에 대해 보도할 만한 것이 생기면 제 손주들 다음으로 여러분(기자)이 가장 먼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보도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FT는 이날 보도에서 "라가르드는 총재는 1년 넘게 세계경제포럼(WEF) 측과 이 기구의 차기 의장직을 맡는 방안을 논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두 명의 관계자는 FT에 "WEF 이사회가 다음 달 또는 11월에 라가르드의 의장 선임안을 표결할 수 있으며, 라가르드가 다음달 ECB 통화정책회의에서 조기 퇴임을 발표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