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기락 기자 = 포스코가 광양제철소에 새로 구축하는 8CGL(연속용융아연도금라인)이 단순한 자동차강판 생산설비를 넘어 저탄소 철강의 '시장 진입로' 역할을 할 전망이다.
전기로에서 생산한 저탄소 쇳물을 자동차 외판용 강판으로 연결하려면 스크랩 성분 관리부터 정련·압연, 소둔·도금까지 전 공정의 정밀 제어가 필요한데, 포스코는 여기에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까지 접목한다. 광양에서 저탄소 고급강의 양산과 고객 인증을 확보한 뒤, 포항의 수소환원제철 'HyREX'로 이어지는 탈탄소 로드맵의 중간 관문인 셈이다.
◆ 8CGL, 저탄소 소재를 '자동차 외판'으로 완성하는 설비
광양 전기로가 저탄소 쇳물 생산의 상류 기반이라면, 8CGL은 전기로 소재와 연계해 자동차 외판용 도금강판을 생산하는 핵심 후공정 설비다.
포스코는 지난 8일 광양제철소에서 연산 45만t 규모의 8CGL을 착공했다. 약 4800억원을 들여 오는 2028년 준공할 계획이다. 포스코가 용융아연도금강판 설비를 새로 짓는 것은 2017년 이후 9년 만이다. 8CGL이 가동되면 포스코의 용융아연도금강판 생산능력은 연 495만t으로 확대된다.
CGL은 냉연코일을 연속적으로 투입해 세정, 소둔, 용융아연도금, 냉각, 조질압연, 표면처리, 권취 등을 처리한다. 소둔을 통해 강판의 기계적 특성을 조정한 뒤 용융아연욕에서 도금층을 형성한다.
강판이 아연욕을 빠져나오면 에어나이프(Air Knife)가 양면의 과잉 아연을 제거해 목표 도금량을 맞춘다. 에어나이프는 용융아연도금 공정에서 강판 표면에 붙은 여분의 녹은 아연을 고압 가스 제트로 불어내 도금량을 정밀하게 맞추는 핵심 설비다. 칼로 자르는 장치가 아니라, 좁고 긴 노즐에서 공기 또는 질소를 강판 양면에 분사해 '도금 두께를 깎아내는 바람 칼'에 가깝다.
포스코는 8CGL에 전기로 강판에 특화한 초고온 열처리 설비를 적용할 계획이다. 전기로 소재의 성분·조직 특성에 맞춰 소둔 조건과 도금 전 표면 상태를 정밀하게 제어하겠다는 의미다. 회사는 최고 온도와 체류 시간 등 세부 사양은 공개하지 않았다. 8CGL은 중대형 SUV와 레저용차량(RV)에 쓰이는 대형 자동차 강판 생산 역량도 강화한다.
◆ AI·로봇, 도금라인의 '편차'를 줄이는 도구
포스코는 8CGL에 30여년간 축적한 조업 노하우와 AI 기술을 적용해 소재·공정·품질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하고 설비 제어에 활용할 계획이다. 고온의 용융아연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거나 시료를 채취하는 고위험 작업에는 AI와 로봇을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도금라인은 온도와 속도, 장력, 아연욕 조성, 에어나이프 압력·거리, 냉각 속도 등이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 공정이다. 한 변수의 변화도 도금 부착량과 표면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다.
AI의 역할도 최종 검사 단계에서 불량을 찾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향후에는 원료와 공정 데이터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품질 편차를 사전에 예측하고 공정 조건을 조정하는 방향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 광양은 시장 대응, 포항 HyREX는 고로 전환
광양 전기로와 8CGL이 현 시점에서 고객이 구매할 수 있는 저탄소 자동차강판을 생산·검증하는 기반이라면, 포항 HyREX는 장기적으로 고로 중심 철강 생산을 바꾸기 위한 기술이다.
HyREX는 철광석을 환원하는 과정에서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하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이다. 철광석에서 수소로 산소를 제거해 환원철을 만든 뒤 이를 전기용융로에서 녹여 쇳물을 생산한다. 청정수소와 무탄소 전력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다면 탄소배출을 구조적으로 크게 줄일 수 있다.
포스코는 2028년 포항에 연산 30만t 규모의 HyREX 실증설비를 준공하고 2030년까지 상용화 기술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HyREX의 상업화는 기술 검증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대규모 청정수소와 무탄소 전력을 경쟁력 있는 가격에 확보해야 하는 등 기술·경제적 과제가 남아 있다.
광양 전기로가 HyREX의 대체재가 아니라 연결고리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기로와 합탕, 8CGL을 통해 저탄소 고급강의 품질·원가·고객 인증을 먼저 검증하고, HyREX를 통해 철광석 환원 단계의 탄소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 성패는 250만t이 아니라 '저탄소 외판' 고객 인증
광양 전기로는 연산 250만t, 8CGL은 연산 45만t 규모다. 전기로에서 생산한 모든 쇳물이 자동차 외판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광양 전기로는 다양한 저탄소 강재 생산을 위한 대규모 쇳물 기반이고, 8CGL은 이 가운데 자동차 외판용 도금강판 생산을 담당하는 핵심 후공정 설비다.
포스코가 풀어야 할 과제는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자동차 외판용 고급 스크랩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고 잔류원소를 관리하는 일이다. 둘째, 합탕과 정련, 연주·압연, 소둔·도금 공정을 통해 기존 고로재와 동등한 표면 품질과 성형성, 내식성, 도장성, 용접성을 재현하는 일이다. 셋째, 제품별 탄소집약도를 국제 기준에 맞춰 산정·검증하고 이를 고객사의 공급망 탄소감축 목표와 연결하는 일이다.
결국 저탄소 자동차강판의 성패는 전기로와 8CGL을 얼마나 크게 지었는지가 아니라, 완성차 업체가 외판 품질을 승인하고 장기 공급계약을 맺으며 '저탄소 가치'에 가격을 얼마나 지불하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광양 전기로에서 시작된 저탄소 쇳물이 적절한 정련·압연과 후공정을 거쳐 8CGL에서 자동차 외판용 도금강판으로 생산될 때 포스코의 탈탄소 전략은 비로소 '설비 준공'에서 '시장 전환'으로 넘어가게 된다. 포항 HyREX는 그 다음 단계에서 포스코가 고로 중심 철강 생산의 탄소 구조를 바꾸기 위해 넘어야 할 더 큰 기술·경제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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