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지난 15일 찾은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특수선 제4공장. 지난해 10월 준공된 총면적 1만2000여㎡의 이 건물 안에 장보고-Ⅲ 배치-Ⅱ 3번함(함명 미부여)이 지상 건조 중이었다. 아직 이름을 받지 못한 선체는 원통형 블록 상태로 조명 아래 놓여 있었다.
호기심에 손으로 만져 본 특수강재는 두께가 만만치 않았다. 이 강판을 절단하고, 둥글게 곡면 처리하고, 다시 용접해 수백m 수압을 견디는 내압선체로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잠수함 선체는 곡률(曲率) 오차가 곧 잠항 깊이의 손실로 이어진다. 절단·곡면·용접의 전 공정이 '㎜ 단위' 관리 대상인 이유다.
공장 천장에서는 스마트크레인이 움직였다. 장애물 자동회피, 흔들림 방지, 지능형 인양물 정렬 기능을 갖췄고, AI 기반 스마트 통합관제 시스템이 전 공정을 들여다본다. 배관제작 공장의 절단·절곡은 자동화됐고, 바닥에서는 물류로봇이 자재를 실어 날랐다. 고소작업용 반자동 폴딩 플랫폼과 함정 작업에 맞춘 용접 연기 흡입장치(자유롭게 구부러지는 호스형)도 눈에 띄었다.
4공장은 잠수함 전용이 아니다. 수상함 실내 조립장을 겸한다. 기상에 구애받지 않는 전천후 작업으로 공기(工期)를 줄이고, 고품질 대형 블록을 뽑아낸다. 울산급 배치-Ⅲ 5·6번함은 물론, 배치-Ⅳ 1·2번함 작업도 이곳에서 이뤄진다.
◆두 사람이 교행하는 잠수함… 209급과는 딴 세상 = 다음 행선지는 안벽에 떠 있는 장보고-Ⅲ 배치-Ⅱ 2번함 '서희함'이었다. 1번함 장영실함이 지난해 10월 말 진수됐고, 서희함은 올 하반기 진수식을 앞두고 있다.
해치 아래 가파른 사다리를 내려서자 과거의 기억과 충돌했다. 기자는 209급(장보고-Ⅰ) 이순신함에 탑승한 적이 있다. 1200t급 함내 통로는 두 사람이 마주 지나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3600t급 배치-Ⅱ는 달랐다. 두 사람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을 만큼 통로가 확보돼 있었고, 체감은 '비좁다'가 아니라 '쾌적하다'에 가까웠다.
전투통제실을 지나 후부의 수직발사관, 전방 어뢰발사관실을 차례로 둘러봤다. 수직발사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갖춘 서희함은 현존 디젤 잠수함 중 가장 강력한 타격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된다. 길이 약 89m, 약 3600t으로 도산안창호급보다 체급이 커졌고, 국산화율은 80%에 이른다.
핵심은 추진체계다. 한화오션이 개발한 공기불요추진체계(AIP)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리튬이온전지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세계 최초 사례다. 디젤 잠수함 중 세계 최장 잠항 능력을 갖췄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전투체계와 소나체계도 성능을 끌어올려 정보처리·표적탐지·육상표적 타격 능력이 강화됐다.
◆페인트 냄새 가득한 평택함… 미 해군이 '주목' = 마지막으로 오른 배는 울산급 배치-Ⅲ 5번함 '평택함'이었다. 함내로 들어서자 페인트와 약품 냄새가 훅 끼쳤다. 건조 마무리 단계의 '현장 냄새'였다.
평택함은 지난달 중순 진수돼 현재 탑재 장비·시스템이 정상 작동하는지 점검하는, STW(Setting To Work) 단계에 있다. 10월부터 정박시운전에 들어가고, 시험평가를 거쳐 내년 12월 해군에 인도된다. 6번함은 내년 초 진수를 목표로 선대 작업 중이며 2028년 6월쯤 인도 예정이다.
제원은 3600t급, 길이 약 130m, 폭 약 15m, 높이 약 40m. 5인치 함포와 한국형 수직발사체계(KVLS), 함대함·전술함대지유도탄, 대함유도탄방어유도탄, 장거리 대잠어뢰를 싣는다. 복합센서마스트(ISM)에는 적외선 탐지추적 장비와 국산 다기능 위상배열레이더(MFR)가 올라간다. 4면 고정형 MFR은 전방위 대공·대함 표적을 동시에 다룬다. 하이브리드 추진으로 소음을 낮추고, 선체고정형 소나(HMS)와 예인형 선배열 소나(TASS)로 대잠전 능력을 보강했다.
건조 공법도 바뀌었다. 한화오션은 평택함에서 선대 탑재 블록을 대형화해 탑재 수량을 절반가량으로 줄였고, 작업 기간을 1~2개월 단축했다. 이 공법은 배치-Ⅳ 1·2번함과 적기 전력화가 지상과제인 KDDX에도 적용된다.
미 정부가 해군 신형 호위함 구매 대상으로 울산급 배치-Ⅲ(충남급)를 검토하면서, 최신형인 평택함을 찾는 미 해군 관계자들의 발길도 잦아졌다는 설명이다.
◆KDX-Ⅰ에서 '장보고-N'까지… "2030년까지 설비 확장" = 한화오션은 KDX-Ⅰ 광개토대왕함, KDX-Ⅱ 충무공이순신함, KDX-Ⅲ 율곡이이함을 모두 건조한 유일한 업체다. 잠수함에서는 1983년 209급 1번함 장보고함 수주 이래 해군 발주 24척 중 17척을 건조했다. 잠수함 건조는 국내 업체 중 독보적이다. 2021년 인도된 도산안창호함으로 한국은 세계 8번째 3000t급 이상 잠수함 독자 개발국이 됐다.
2023년 5월 한화오션 출범 이후 수주도 이어졌다. 2023년 11월 울산급 배치-Ⅲ 5·6번함, 2024년 12월 배치-Ⅳ 1·2번함 계약에 이어 지난 7월에는 7조8000억원 규모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자로 선정됐다. 목표는 2032년 선도함 전력화다. 2030년대 중후반 전력화를 겨냥한 한국형 핵추진잠수함(장보고-N) 사업도 대기하고 있다.
기자가 "한화오션이 장보고-N 사업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부지는 확보하고 있나"라고 묻자, 한화 관계자는 "핵추진잠수함은 6000~7000t이 넘는 몸집이어서 훨씬 더 넓은 부지가 필요할 것"이라며 "거제 사업장엔 이미 충분한 부지를 확보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업자의 입장에선, 설령 부지가 없더라도 사업만 따낸다면 하늘에서라도 건조할 것"이라며 웃었다.
투자는 계속된다. 한화오션은 2030년까지 함정 동시 건조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실내탑재장 신축, 선대 확장, 안벽 추가 확보를 수주 상황에 맞춰 유동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김규백 한화오션 특수선사업부 사업관리 담당 상무는 "선제적으로 생산시설을 확충하고 기술 경쟁력을 극대화해 '함정 명가'의 전통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1998년 방글라데시 호위함을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훈련함, 태국 호위함, 영국·노르웨이 군수지원함을 수출해온 한화오션의 해외 공략은 사실상 지금부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KDDX 건조로 한국형 이지스함 시대를 열고, 장보고-N 핵추진잠수함 건조로 잠수함 시대의 '신기원'을 이룰 이 거제사업장이 다시 한번 천지개벽할 날도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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