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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장류, 전통주 등 한국의 전통 먹거리가 미식의 수도 파리에서 새로운 맛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인마트와 한식당을 넘어 현지 대형마트와 백화점 식품관까지 한국 식품을 만날 수 있는 공간도 넓어졌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15년, 한국의 맛은 프랑스인의 식탁에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뉴스핌>은 파리 현지의 식당과 수입·유통업체 등을 직접 찾아 한국 전통식품의 현재를 살펴보고, 유럽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식문화로 자리 잡기 위한 가능성과 과제를 짚어본다. [파리에서 만난 한국의 전통] 기획시리즈 5부작 ① 간장 수출 1년 새 3배로…프랑스 식탁 파고드는 'K-발효' |
[프랑스=뉴스핌] 김기랑 기자 = "프랑스 소비자가 단순히 '한국 제품이라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브랜드인데 알고 보니 한국 제품이었다'고 느낄 수 있는 수준까지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프랑스에서 한국 전통주를 수입·유통하는 김태은 TN GLOBAL 대표가 그리고 있는 K-전통주의 미래다. 한식당이나 한국 관련 행사에서만 만날 수 있는 술이 아니라 파리의 레스토랑과 바에서 자연스럽게 주문하는 하나의 주류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1일 프랑스 파리 인근에 위치한 TN GLOBAL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파리에서 한국 제품을 특별히 찾아다녀야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레스토랑과 바, 백화점, 약국, 매장 등 일상적인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TN GLOBAL은 한국 제품과 브랜드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시장에 소개하고 현지 수입·유통과 시장 개발을 하는 업체다. 김 대표는 2019년부터 유럽 제품을 한국에 소개하는 사업을 해오다 한국 제품을 유럽에 알리는 사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현재는 한국 화장품과 주류를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향후 식품과 패션 분야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특히 한국 제품이 해외에서 '가성비 좋은 제품'으로만 소비되는 것을 넘어 개별 브랜드의 철학과 품질, 디자인과 기술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제품도 단순히 가성비를 앞세우기보다 각각의 브랜드가 가진 철학과 품질, 디자인, 기술력을 인정받고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자체가 하나의 프리미엄 가치로 받아들여지는 단계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 "파리 바에서 한국 술 한 잔"…한식당 밖으로 나가는 전통주
한국 전통주의 현지화를 위해 TN GLOBAL이 주목하는 것은 소비자가 술을 처음 접하는 '경험'이다.
지난해와 올해 팝업 행사와 프랑스 미식 행사 '라 리스트(La Liste)'에서는 한국 주류를 활용한 칵테일을 선보였다. 유자를 활용한 술은 칵테일뿐 아니라 슬러시 형태로 제공했다.
김 대표는 "전통주라는 이름만 들었을 때는 다소 낯설게 느끼던 분들도 자신에게 익숙한 칵테일이나 시원한 음료 형태로 접하면 훨씬 자연스럽게 맛과 향을 경험했다"며 "한국 전통주를 알리는 데에는 제품 자체를 설명하는 것뿐 아니라 '어떻게 경험하게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한국 전통주를 반드시 한식과 묶을 필요도 없다고 봤다. 제품 특성에 따라 프렌치 요리와 페어링하거나 식전주와 디저트주, 칵테일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쌀과 곡물을 기반으로 한 발효주부터 과실주와 증류주까지 다양한 종류의 술이 있다. 원료와 제조 방식뿐 아니라 맛과 향, 알코올 도수도 제품마다 달라 프랑스의 다양한 식문화와 연결할 여지가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제품의 특성에 따라 프렌치 요리와 페어링하거나 식전주, 디저트주, 칵테일 등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며 "이런 가능성을 제대로 보여준다면 단순히 '한국 음식과 함께 마시는 한국 술'을 넘어 하나의 새로운 주류 카테고리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3~5년 뒤 기대하는 모습도 파리의 평범한 바에서 한국 술을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한국 술을 마시려면 한식당이나 특정 한국 관련 행사를 찾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앞으로는 프렌치 레스토랑의 주류 리스트에서도 한국 전통주를 발견하고 일반 바에서도 한국 술을 활용한 시그니처 칵테일을 자연스럽게 주문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 소주는 알지만 전통주는 아직…프랑스 시장 형성 '첫걸음'
다만 이런 목표까지 가기 위해 넘어야 할 문턱은 여전히 높다.
프랑스에서 한국 술 자체가 생소한 것은 아니다. K-팝과 한국 드라마, 영화 등의 영향으로 소주는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술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약주와 과실주 등 다양한 한국 전통주로 범위를 넓히면 상황은 다르다. 현지에서 판매되는 제품이 많지 않고 소비자도 제품의 종류나 마시는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김 대표는 "소주를 제외한 다양한 한국 전통주는 아직 시장 형성의 아주 초기 단계라고 보고 있다"며 "안정적으로 반복 주문이 발생하는 판매처가 많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어 "제품을 한 번 소개하는 것보다 소비자가 실제로 주문하고 판매처에서 다시 재주문이 일어나게 만드는 과정이 훨씬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 양조장에서 생산한 전통주가 프랑스 소비자에게 도달하기까지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현지 수입업체가 제품을 발굴한 뒤 장거리 운송 과정에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지와 보관 방식, 유통기한 등을 살핀다. 이후 첨가물과 성분, 알코올 도수, 용량, 라벨뿐 아니라 병과 캡, 박스 등 포장재 관련 유럽 규정도 확인한다.
계약과 운송, 통관을 마치면 현지 창고를 거쳐 레스토랑과 판매처로 공급된다. 문제는 그 이후다.
김 대표는 "제품을 프랑스에 들여오는 것보다 그 이후가 더 어렵다고 느낀다"며 "아직 한국 전통주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직접 레스토랑과 바, 주류 관계자에게 제품을 설명하고 시음을 제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격 부담도 있다. 술은 유리병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국제운송비가 상대적으로 높고, 시장 초기에는 소량 수입이 많아 병당 운송비가 더 커질 수 있다.
프랑스에 도착한 뒤에는 주류 종류와 알코올 도수 등에 따른 주세와 20%의 부가가치세(TVA), 통관 대행료와 창고 보관료, 현지 배송·유통비 등이 추가된다. 레스토랑과 바의 운영비와 마진까지 더해지면 소비자가 접하는 가격은 한국보다 높아질 수 있다.
다만 김 대표는 가격을 낮추는 것만으로는 해법이 되기 어렵다고 봤다. 잔 단위로 부담 없이 경험하도록 하거나 음식과 페어링해 제품의 맛과 가치를 먼저 이해시키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 FTA로 열린 시장…다음 관문은 '소비자 선택 받기'
한·EU FTA를 통해 제도적인 시장 접근 여건이 마련됐더라도 실제 소비시장을 만드는 것은 또 다른 과제다.
김 대표는 FTA 발효 전후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전제하면서 "제도적으로 시장에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는 것과 실제로 소비자에게 선택받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제품을 수입하고 통관하는 것은 필요한 절차와 규정을 제대로 준비하면 진행할 수 있다"면서도 "그 이후 소비자가 그 술을 알고, 한 번 맛보고, 다시 찾게 만드는 과정은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전통주 시장이 형성되는 초기 단계에서는 양조업체와 현지 수입업체뿐 아니라 정부와 수출지원기관의 역할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우선 유럽 수출 과정에서 요구되는 성분·첨가물과 라벨, 포장·폐기물 기준 등을 국가·시장별로 정리해 제공하고 전문가 검토를 지원한다면 작은 양조장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지 수입·유통업체가 새로운 제품을 소량으로 들여와 시음이나 레스토랑 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초기 물류비나 시장 테스트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시장 반응이 확인되면 이후 민간의 정상적인 거래와 반복 주문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김 대표는 "한국에서 좋은 술을 만들고, 현지 수입업체가 시장을 개척하며, 정부가 시장이 형성되는 초기 단계의 위험과 비용을 함께 나누는 구조가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TN GLOBAL이 목표로 하는 것도 결국 '수출' 자체가 아니라 현지에서 살아남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김 대표는 "한쪽의 제품을 다른 쪽에 단순히 전달하는 중간상이 아니라, 양쪽 시장을 이해하고 실제 거래와 장기적인 브랜드 성장으로 연결하는 파트너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r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