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뉴스핌] 최헌규 베이징 특파원= 장강을 따라가다 보면 거대한 강의 또 다른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중국 경제 성장의 대동맥이자 내륙 수운 물류의 핵심 통로인 장강이 '장강문명포럼' 취재차 참석한 이번 여정에서는 천년 전 시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문명의 길'로 다가왔다.
9월 18일 장강문명포럼 문화탐방 교류 활동 마지막 날. '황금8호' 크루즈가 충칭 펑제현 부두에 정박했다. 배에서 내려 강둑으로 올라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큰 간판에 적힌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시였다.
"아침에 백제성에 작별하고, 천리 강릉을 하루 만에 돌아가네…"
이백의 대표작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크루즈 여행객을 맞았다. 이백이 유배길에 올랐다가 사면 소식을 듣고 돌아오면서 기쁜 마음으로 지었다는 시다.
시의 첫 구절에 등장하는 '채운간(彩云间, 채색구름 사이로)'이라는 표현은 펑제 곳곳에서 마치 시인과 함께 살아 숨 쉬는 듯했다. 천년 전 이백이 바라봤던 산과 장강, 산등성이에 노을 진 구름을 표현한 이 싯구절이 오늘날에는 문예창작 상품은 물론, 호텔과 카페 이름 등으로 되살아나 세계의 여행객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호텔에도 '채운간(차이윈젠)'이라는 상호를 내건 휴게 공간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차와 커피는 물론 마사지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천년 전에 살았던 이백의 시 한 구절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며 일상의 공간에 스며든 모습이다.
펑제가 '시의 도시'로 불리는 이유는 이백 한 사람 때문만은 아니다. 장강 상류의 이곳은 이백과 두보 등 중국 역사상 이름난 문인들이 배를 타고 오르내리며 수많은 시를 남긴 곳이다.
장강은 그들에게 이동과 교류의 통로였고, 동시에 창작을 위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선상 '장강문명포럼'의 한 발표자는 "오늘날 장강이 중국 경제를 움직이는 물류의 대동맥이라면, 과거에는 시인과 문인들이 오가며 문명을 전하는 문화의 대동맥이었다"고 말했다.
장강포럼 참석자 일행은 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산길을 올랐다. 버스가 구름이 걸린 산허리를 돌 때마다 저 발치 아래로 장강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목적지는 충칭 펑제현의 산샤지덴(三峡之巅), 말 그대로 '삼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해발 1300여m의 전망대에서는 장강과 장강을 품은 거친 야생의 산악 지형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곳곳에 세워진 정자와 전망대에는 독특한 이름이 붙어 있었다. 이름의 상당수가 이백의 여행 기록과 시문에서 따온 것이라고 했다.
한 정자에는 '이백이 바둥(후베이성)에서 삼협의 하나인 구당협을 지나 우산(충칭)의 높은 봉우리에 올라 황혼 무렵 벽에 시를 새겼다'는 내용의 기록을 소개하고 있었다.
중국 국내외 언론과 학계, 문인 기관 관계자들이 함께한 장강문명포럼 탐방단뿐 아니라 관광객들도 몰려들었다. 천년 전 시인이 걸었던 길은 장강 여행의 명소가 돼 오늘날 중국 안팎에서 많은 유커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장강문명포럼 취재중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충칭시가 생태환경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은 이번 장강문명포럼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약 20개국에서 참석한 포럼 참석자들에게 위안자쥔 충칭시 당서기는 충칭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제시한 '생태문명' 개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녹수청산이 곧 금산은산(绿水青山就是金山银山), 대개발을 삼가자.' 이를 상징하듯 장강 크루즈에서 산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이런 내용의 커다란 입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경제성장의 대가로 자연환경을 희생했던 시대와 결별하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고해 보였다. 천혜의 자연자원을 보유한 장강 상류 충칭은 경제 성장과 생활 수준 향상, 환경 보호를 함께 추진하는 생태문명 중심 도시를 내세우고 있다.
충칭 펑제현 구간 장강 위쪽 산비탈을 뒤덮은 귤밭도 장관이다. 중국판 '제주 감귤밭'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산 능선을 따라 조성된 귤밭은 산림 녹화와 농가 소득이라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는 산지 농업 현장이었다. 장강의 산들은 산허리에 걸린 하얀 구름과 어우러지면서 한 폭의 산수화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시의 도시 '시성(诗城)' 충칭 펑제현. 장강변 삶의 이야기들은 천년 세월을 넘어 오늘까지 시가 되어 이어지고 있었다. '펑제현 시성로(诗城路)'에는 추석과 국경절 연휴를 앞두고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가 줄지어 내걸려 있었다. 문명의 강을 따라 시작한 취재 여정은 천년의 시와 인문이 응축된 이곳 펑제에서 막을 내렸다.
일주일 동안 이어진 장강 중상류 도시 탐방은 미래를 향해 줄달음 치는 새로운 중국을 엿보는 기회가 됐다. 장강 중류 우한은 로봇과 첨단 제조업으로 새로운 성장의 옷을 갈아입고 있었고, 장강 지류의 도시 샹양에서는 자동차와 배터리가 내륙 제조업의 변화를 보여줬다. 충칭에서는 첨단 기술과 함께 장강 문명의 에너지가 신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베이징 특파원 chk@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