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남정훈 기자 = 프로의 이름값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KBO리그 각 팀의 주축 선수들로 꾸린 한국 야구 대표팀이 일본 사회인야구 대표팀을 상대로 단 한 점도 뽑지 못했다. 상대가 강했다는 말만으로 넘기기에는 타격부터 수비, 마운드까지 경기 내용이 너무 무기력했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25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하시 시민구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야구 슈퍼라운드 1차전에서 일본에 0-5로 완패했다.
조별리그에서 3전 전승을 거두며 B조 1위로 슈퍼라운드에 올라온 한국의 이번 대회 첫 패배다. 특히 한국이 아시안게임에서 사회인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에 패한 것은 2006 도하 대회 이후 20년 만이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타선이다. 한국은 김도영(KIA)-김주원(NC)-노시환(한화)-문보경(LG)-박준순(두산)-윤동희(롯데)-조형우(SSG)-박재현(KIA)-김지찬(삼성)으로 선발 라인업을 구성했다. KBO리그에서 각 팀의 주축으로 뛰는 선수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화려한 이름값은 일본 마운드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한국이 9이닝 동안 기록한 안타는 단 4개였다. 삼진 6개를 당하는 동안 볼넷은 하나도 얻지 못했다. 김주원만 멀티히트를 기록했을 뿐 김도영은 4타수 무안타 2삼진, 문보경도 3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특히 일본 선발 히구치 신에게 철저하게 눌렸다. 히구치는 불과 나흘 전 중국전에서 86개의 공을 던진 뒤 짧은 휴식만 취하고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그럼에도 7이닝 동안 한국 타선을 4피안타 무사사구 무실점으로 봉쇄했다.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문제는 어렵게 만든 기회를 한국 스스로 지워버렸다는 점이다.
1회 김주원이 안타를 치고 출루했지만, 노시환이 병살타를 기록했다. 4회에도 김주원이 다시 출루했지만, 노시환이 또다시 병살타로 물러났다. 5회에는 박준순이 좌전 안타를 때린 뒤 윤동희가 병살타를 쳤다. 6회까지 나온 안타 3개가 모두 병살타로 사라졌고, 한국은 2루 베이스를 단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다.
일본이 출루를 득점으로 연결했다면, 한국은 출루를 병살타로 지웠다. 단순히 타격감이 좋지 않았다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대목이다. 주자가 나간 상황에서도 상대 투수의 패턴을 흔들지 못했고, 공격 방법을 바꾸지도 못했다.
사실 불안 신호는 이미 있었다. 한국은 조별리그 첫 경기였던 대만전에서도 선발 린이웨이를 상대로 5회까지 단 1점밖에 뽑지 못했다. 홍콩과 태국을 상대로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며 콜드게임 승리를 거뒀지만, 투수 수준이 올라가자 타선의 파괴력은 급격히 떨어졌다.
이번에도 같은 문제가 반복됐다. 일본 투수들의 변화구 완성도와 제구력을 충분히 경계하고도 해법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일본 사회인 야구를 단순한 '아마추어'로 평가절하해서도 안 된다. 일본 사회인야구는 고교와 대학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수준급 선수들이 기업팀 소속으로 경쟁하는 무대다. 프로 지명 후보들도 적지 않다.
이날 한국을 꽁꽁 묶은 히구치 역시 일본 사회인야구에서 정상급 성적을 남긴 좌완이다.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한 카요 슈이치로 역시 프로 무대의 관심을 받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투수다. '사회인'이라는 신분이 곧 낮은 경기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KBO리그 선수들로 구성된 한국이 보여준 경기력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대표팀 역시 경기 전부터 일본 투수들의 수준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 상대가 예상보다 강해서 당한 것이 아니라 강점을 알고도 공략법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이 더 뼈아프다.
마운드와 수비에서도 프로의 우위를 찾기 어려웠다. 선발 소형준(KT)은 1회부터 2루타와 몸에 맞는 공을 허용하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2회는 삼자범퇴로 넘겼지만 3회 결국 무너졌다. 안타와 볼넷으로 1사 1, 2루 위기를 자초한 뒤 무코야마 모토키에게 적시 2루타를 허용했다.
이어 내야 땅볼로 한 점을 더 내줬고, 미즈타니 쇼헤이의 타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는 김주원의 송구 실책까지 나오면서 순식간에 0-3으로 벌어졌다. 소형준은 결국 3이닝 4피안타 2사사구 3실점(2자책)으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김진욱(롯데)이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잠시 흐름을 끊었지만, 믿었던 필승조도 일본 타선을 제어하지 못했다. 6회 등판한 조병현(SSG)이 안타와 볼넷을 허용하며 흔들렸고 적시타까지 맞았다. 뒤이어 투입된 박영현(KT)도 소에다 마나미에게 적시타를 허용하면서 점수는 0-5까지 벌어졌다.
조별리그 세 경기에서 단 한 점만 허용했던 한국 마운드는 일본을 상대로 9안타를 맞았다. 대만 타선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던 투수진의 위력도 이날만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공격에서는 병살타로 기회를 날렸고, 수비에서는 실책으로 실점을 헌납했으며, 필승조까지 추가점을 허용했다. 일본은 한국의 실수를 놓치지 않은 반면 한국은 일본이 내준 작은 틈조차 살리지 못했다. 프로와 사회인이라는 간판의 차이는 그라운드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결국 이번 패배에서 바라봐야 할 것은 단순한 사회인 일본에 졌다는 충격적인 결과만이 아니다. 국제대회에서 상대 투수의 수준이 올라갔을 때 한국 타선이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지, 경기 흐름이 꼬였을 때 벤치와 선수들이 어떻게 변화를 만들어낼지를 찾지 못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류지현 감독 역시 경기 후 "대만전 때도 5회까지 상대 선발 투수에게 묶여 순조롭게 경기를 풀어가지 못했다"라며 타선의 문제를 인정했다. 이어 "숙소에 가서 내일을 준비하며 타순을 생각해보겠다"라고 밝혔다.
아시안게임 5연패를 노리는 한국은 이제 26일 중국과의 슈퍼라운드 2차전을 치른다. 조별리그 대만전 승리를 안고 올라온 덕분에 아직 결승 진출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
2년 연속 1000만 관중 시대를 열 정도로 KBO리그의 인기는 뜨겁다. 그러나 리그의 흥행과 국제무대의 경쟁력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일본전 0-5 완패는 '프로'라는 이름과 KBO리그에서의 성적만으로 국제무대의 우위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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