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2월 24일 국무회의에서 농지가 투기 대상으로 전락했다며 농지 전수조사와 처분 명령을 지시했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5월 7일 농지법 위반 농지에 대한 처분 명령을 의무화하는 개정안을 처리했고, 개정 농지법은 8월 28일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전수조사와 규제 강화로 농촌 현장에서는 혼란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농촌의 복잡한 소유·임대차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규제라는 지적과 함께 제도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농촌 현장의 목소리와 전문가 제언을 통해 농지 규제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짚어본다.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농지 투기를 차단하기 위한 정부의 전수조사가 농촌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져 온 임대차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정부는 투기 목적의 농지와 고령·상속 등 불가피한 사유로 발생한 임대차를 구분해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농촌 현장에서는 매수자를 찾기 어려운 농지를 직접 경작하기도, 기존처럼 다른 농민에게 임대하기도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전수조사에 농지법까지 강화…李 "반발에도 회피 않겠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농지 시세 하락과 수요 감소가 이어지는 가운데 농지법까지 한층 강화되면서 혼란을 호소하는 농지 소유자가 늘고 있다.
정부는 지난 5월부터 전국 농지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농지는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에 따라 원칙적으로 직접 농사를 짓거나 농업경영에 이용할 사람이 소유해야 한다. 농사를 지을 목적 없이 땅값 상승 등을 기대해 농지를 취득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소유 농지를 다른 사람에게 임대하는 행위는 제한된다.
현재 기본조사를 마치고 지난달부터 현장 중심의 심층조사에 들어갔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일반·경미한 위반과 투기 목적의 중대한 위반을 구분해 후속 조치에 나설 방침이다.
농지 관리 규정도 강화됐다. 정당한 사유 없이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는 등 처분 의무 대상에 해당하면 일정 절차를 거쳐 농지를 처분해야 한다. 불법 농지 임대차는 신고포상금 지급 대상에도 포함됐다.
조사가 본격화하면서 농촌에서는 반발과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2일 충남 홍성에서 진행한 현장 간담회에서도 농민들은 "전수조사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조사 기준이 불명확하고 농촌의 복잡한 소유·임대차 구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우려했다. 전수조사 이후 농지 거래가 줄고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는 현장 목소리도 나왔다.
당정은 명백한 투기 행위는 엄격히 조치하되 경미하거나 관행적인 위반은 계도와 제도 개선을 통해 정상화하겠다는 후속 방침을 내놨다. 농지연금과 농지은행 관련 재원을 확대하고 조사 결과를 토대로 특별법 제정과 농지법 개정도 추진하기로 했다.
전수조사 자체는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이 대통령은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농지투기 방지와 제대로 된 농지활용을 위해 농지전수조사는 꼭 필요하다"며 "저항과 반발 때문에 모든 정부가 회피했지만 저는 회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농사를 짓다가 고령으로 경작하지 못하게 됐거나 상속받은 농지는 처분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 팔자니 살 사람 없고 빌려주자니 불법?…농지 소유자 '난감'
농지 소유자들은 직접 농사를 짓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농지를 처분하거나 다른 농민에게 임대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호소한다. 고령으로 영농을 이어가기 어려운 농민이나 상속으로 농지를 취득한 비농업인은 직접 경작이 어려워 매각이나 임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농지는 일반 토지와 달리 취득과 이용에 제한이 있는 데다 임대 역시 농지법에서 정한 경우에만 허용된다.
농지를 매각하려 해도 수요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매수자를 찾는 것부터 쉽지 않다. 정부도 지난 21일 전수조사 후속대책을 발표하면서 고령이나 상속 등으로 직접 경작하기 어려운 데다 매수 희망자마저 찾지 못해 방치되는 농지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대상으로 꼽았다. 이 같은 농지는 한국농어촌공사 농지은행에 위탁해 임대·관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주변 농민에게 농사를 맡기는 것도 부담이다. 현행 농지법은 농지 임대를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법에서 정한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허용하고 있다. 전수조사와 함께 불법 임대차에 대한 신고포상금과 농지 처분 관련 규정까지 강화되면서 그동안 마을 주민이나 지인 사이에서 계약서 없이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임대차 역시 점검 대상이 될 전망이다.
실제 농촌에서는 이런 방식의 임대차가 적지 않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서 영농 경력 30년 이상 숙련·고령농 가운데 '가족 또는 지인 권유로 농지를 임차했다'는 응답은 21.3%로 전체 평균 18.1%보다 높았다. 문중 농지나 인접 농지 관리 등이 뒤를 이었다.
유제범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불법 임대차 상당수는 조합원 자격과 노후 자산 등을 지키려는 고령농의 절실함과, 땅 한 마지기가 아쉬운 청년·전업농의 현실적 필요가 결합된 구조적 산물"이라며 "조사 과정에서 이런 사례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처벌만으론 한계…합법적 임대 활성화해야"
농지 불법 임대차를 단속하는 것만으로는 농촌 현장의 문제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지 임대차가 고령화와 영농 규모 확대 등 농촌의 구조 변화와 맞물려 있는 데다, 자경을 유도하는 현행 세제도 음성적인 임대차를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임차농지 면적은 2013년 85만6000ha로 정점을 찍은 뒤 연평균 약 1만3600ha씩 감소했다. 임차농지의 지니계수는 2000년 0.54에서 2020년 0.66으로 높아져 일부 대규모 농가로 임차농지가 집중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농지를 빌려주는 쪽에서는 고령화의 영향이 두드러졌다. 영농 은퇴를 앞둔 고령농과 상속을 통해 농지를 취득한 도시 거주 비농업인이 주요 임대 공급자로 자리 잡은 셈이다. 이들 대부분은 농지 훼손에 대한 우려와 자산 보유 목적 등으로 지인 등을 통한 사적 임대차를 선호했다. 세제와 직불금 등 자경에 유리한 제도도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임대차나 '위장 자경'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업계에선 이런 구조를 고려하면 규제와 단속만으로 음성적인 농지 임대차를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시선이 짙다. 채광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농지 소유자가 스스로 농지를 공식 임대차 시장에 내놓을 수 있도록 '합법적 출구'를 마련해야 한다"며 "농지은행을 통한 장기 임대 시 세제상 혜택을 부여하고 농지연금이나 직불금 등을 고령농의 영농 은퇴와 연계하는 방안 등이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농지 소유자가 음성적인 임대 대신 합법적인 임대를 선택하도록 아예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종훈 국회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장은 "농지 소유자의 '심적 거부감'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실제 농지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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