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우리는 통치할 준비가 돼 있다."
지난 9월 6일 오후 6시(현지시각). 옛 동독 지역 5개 주(州) 중 한 곳인 독일 중부 작센안할트 주의회 선거 마감과 동시에 출구조사가 발표됐다. 극우 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이 예상 득표율 44.5%로 압승을 거둘 것으로 예상됐다.
울리히 지그문트 AfD 주총리 후보는 주먹을 불끈 쥐며 "유권자들은 우리에게 분명한 집권 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책임질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최종 집계 결과는 43.8%. 집권 여당 중도 우파 기독민주당(CDU)의 17.2%보다 거의 두 배가 높았다. 전체 주의회 의석 83석 중 39석을 휩쓸었다. 기민당(15석)보다 24석이 더 많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독일 극우 정당이 주의회 선거에서 제1당을 차지하는 순간이었다. 앨리스 바이델 AfD 공동대표는 "역사적 승리"라며 "이것은 시작일 뿐"이라고 했다.
외신들은 속보를 타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독일 정치에 지각 변동(seismic shift)이 일어났다"고 했고,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독일발 충격파"라고 했다. 로이터통신은 "독일 정치의 역사적 전환"이라고 했다.
독일과 유럽 전역의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심각한 우려와 함께 한편으로는 "올 것이 결국 온 것인가"라는 반응도 내보였다.
유럽은 지난 2015년 시리아 난민 사태를 계기로 극우 세력의 급부상과 선거 돌풍을 겪었다. 스웨덴과 네덜란드, 폴란드, 헝가리,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에서 극우 정당과 유력 인사들이 등장해 인기를 끌었다. 이후 중도 진영이 집권에 성공하면서 주춤하는 듯 했지만 최근 '태풍급' 파괴력을 가진 세력으로 성장해 유럽을 다시 휩쓸고 있다.
■ 10년 만에 '돌풍' 아닌 '태풍급' 파괴력… 수권 세력으로 발돋움
독일 극우 정당의 성장 과정은 그들의 존재감이 단순한 '돌풍'을 넘어 어엿한 '수권(受權)' 정당 수준으로 발돋움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지난 2013년 초 등장한 AfD는 처음엔 유로화 구제금융과 유럽 재정통합에 반대하는 '유로 회의론' 정당이었다. 그해 연방하원 선거 득표율이 4.7% 그쳐 의석 확보 최소 기준선인 5%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반이민'이라는 색깔옷을 입고 시리아 난민 사태가 촉발한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덩치를 키웠다. 이듬해 작센과 브란덴부르크, 튀링겐 주의회에 진출한 데 이어 2017년 연방하원에 입성했다.
지난 2021년 작센안할트 주의회 선거에서 20.8%를 얻어 제2당으로 올라섰고, 올해 선거에서는 득표율을 배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작년 연방 총선에서도 20.8%로 중앙 무대서도 2당 자리를 꿰찼다.
유럽의 학자와 전문가들은 지난 2015~2018년이 시리아 난민 사태가 촉발한 '첫 번째 극우 확산기'였다면 2024~2026년은 이민 문제와 생활비 위기, 경기 침체, 안보 불안,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중첩되며 만들어낸 극우의 '두 번째 상승기'라고 평가하고 있다.
유럽 최대 극우 정당 데이터베이스 '더 포퓰리스트'를 이끄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마테이스 로다윈 교수는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 서유럽에서 극우 세력이 과거 어느 때보다 빠르게 성장했다"며 "현재 유럽 유권자의 거의 4분의 1이 극우 정당을 지지한다"고 분석했다.
유럽 곳곳에선 이미 극우 정당들이 원내 1당을 차지하거나 연정에 참여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자유당은 지난 2017년 총선에서 26.0%를 얻어 제3당이 됐고, 제1당인 국민당(31.5% 득표)과 연정을 구성했다. 내무부 등 핵심 부처를 맡으며 집권 세력이 됐다. 2024년 총선에서는 28.85%로 전체 183석 중 57석을 얻어 1당을 차지했지만 다른 정당들이 협력을 거부해 현재 야당으로 남아 있다. 집권 경험도 있고, 제1당도 된 최초의 서유럽 극우 정당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가 이끄는 네덜란드 자유당(PVV)은 지난 2023년 총선에서 원내 1당을 차지했다. 우파 정당들과의 연정 협상에 참여했고, 이듬해 결국 연정의 일원이 됐다. 이후 난민 정책을 둘러싸고 갈등이 불거지며 연정은 붕괴했다. 지난해 10월 실시된 조기총선에서 자유당은 16.66%를 얻어 26석을 차지했다. 원내 1당 민주66(16.94%)과 의석수가 같았다.
유럽에서 인구 기준 난민을 가장 많이 받아들인 스웨덴에서는 스웨덴민주당(SD)이 난민 사태를 계기로 유력 정당으로 성장했다. 지난 2022년 총선에서 제2당이 됐다. 우파 연합 내 최대 정당이다. 다른 우파 정당들의 거부감 때문에 내각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협정을 통해 예산과 이민, 치안 정책 등에서 핵심적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최고 권위의 극우 연구자로 평가되는 네덜란드 출신의 카스 무데 미 조지아대 교수는 이를 '유럽 극우의 주류화'라고 설명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산하 공동연구센터(JRC)는 올해 민주주의 전망 보고서에서 "분노와 정치 불신, 이민 문제가 결합하면서 유럽 극우는 지지 기반을 크게 넓혔다"며 "극우는 유럽 정치에서 '구조적 세력'이 되고 있다"고 했다.
■ 2027년은 선거의 해… 프랑스 대선, 글로벌 마가 진영의 '최대 승부처'
유럽은 내년에 숨이 가쁠 정도의 선거 일정을 앞두고 있다.
프랑스는 4월 11일 또는 18일 1차 대통령 선거를 실시할 예정이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2주 뒤 상위 득표자 2명이 결선투표를 치른다.
핀란드와 스페인, 폴란드가 각각 4월과 8월, 11월 총선이 예정돼 있다. 이탈리아도 이르면 하반기, 늦어도 12월 22일까지 총선을 실시할 예정이다.
독일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등 전체 16개 연방 주 중 5곳에서 주의회 선거가 치러진다. 에스토니아, 그리스, 슬로바키아에서도 총선이 실시된다.
미국 싱크탱크인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최근 보고서에서 "2027년은 유럽에 특별한 해가 될 전망"이라며 "EU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이 막강한 회원국 가운데 네 곳이 선거를 치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 네 나라 모두에서 포퓰리즘 및 급진 우파 정당들이 좋은 성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특히 프랑스 대선은 유럽을 넘어 미국 등 전 세계 정치권이 주목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독일과 함께 EU를 이끄는 양대 축 중 하나인 프랑스의 대선은 글로벌 마가(MAGA) 진영이 '승부처'로 보는 무대이다.
프랑스에서 극우 인사가 대통령이 된다면 유럽과 EU의 위상과 역할, 진로가 근본적인 방향 전환에 들어갈 수 있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국민연합(RN) 소속의 마린 르펜 후보는 EU를 내부로부터 변화시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27개 회원국에게 권력을 되돌려주고 이민부터 외교 정책에 이르기까지 EU 집행위의 간섭을 종식시키겠다고 밝혔다.
RN 강령에는 EU에 대한 프랑스의 예산 분담금을 절반으로 줄이고, 국익에 반한다고 판단되는 에너지 정책의 상당 부분을 거부하며, 국경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는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프랑스 유권자들은 지난 202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RN에 31%의 득표율을 안겨주며 1위를 차지하게 했다.
■ 미 중간선거, 유럽에 得 될까 失 될까… 동력 제공? 피로감?
영국의 국제문제·안보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지난해 4월 발표한 보고서 '수정주의 세력의 동맹 : 대서양 횡단 관계의 새로운 시대'에서 미국의 마가 진영과 유럽의 극우 세력이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공동의 적으로 인식하면서 '초국가적 정치 연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미국과 유럽의 정치 경쟁을 개별 국가 차원이 아닌 서구 문명의 존립을 둘러싼 '문명 전쟁'으로 규정하면서 국경을 초월해 서로를 지원하며 공동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 정치권에서는 "미국 중간선거는 더 이상 미국만의 선거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공화당, 특히 MAGA 진영의 정치적 위상과 오는 11월 중간선거 결과는 유럽 극우 정당들이 가장 강력한 국제적 후원 세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변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데 조지아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극우의 정책과 전략, 정당성을 강화하는 국제적 기준점 역할을 한다"며 트럼프와 마가 세력이 국내에서 정치적 위상과 힘을 유지하면 유럽 극우도 동력을 얻는다고 진단했다.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이자 바이든 행정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기획 선임국장을 지낸 토머스 라이트는 미국 시사잡지 '디 애틀랜틱' 기고에서 "트럼프는 프랑스의 국민연합과 독일의 AfD 등을 미국의 동맹으로 키우려 한다"면서 "그들의 성패는 결국 트럼프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에 달려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트럼프와 공화당이 승리한다면 유럽 극우 진영에 대한 더욱 강력한 지원과 추가 동력이 제공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모델은 여전히 통한다"라는 자신감이 유럽에 강한 파장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와 현 집권세력은 지난해 독일 총선과 올해 헝가리 총선 등 주요 유럽 선거에 강하게 개입해 왔다.
JD 밴스 부통령은 지난 4월 헝가리 총선을 불과 5일 앞두고 부다페스트를 방문해 대표적인 친트럼프 인사인 당시 오르반 빅토르 총리를 "서구 문명을 수호하는 지도자" "트럼프 행정부의 가장 중요한 유럽 동맹"으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반면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의회를 탈환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추진력과 정치적 영향력이 일정정도 제약을 받으면서 글로벌 마가 세력이 위축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 마가'의 후광 효과가 사라지고 트럼프식 정치도 국민적 심판을 받고 있다는 메시지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