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기락 기자 = 오는 14일 취임 6주년을 맞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자동차 제조를 넘어 '피지컬 인공지능(AI) 기업'으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판매 3위로 올라선 완성차 사업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자율주행과 로보틱스, AI 기반 제조를 연결해 새로운 성장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난 6년이 현대차그룹의 외형과 수익성,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는 축적한 제조·기술 역량을 미래 사업의 성과로 연결하는 과정이 될 전망이다. 자동차와 로봇을 넘어 공장과 도시 전체로 AI의 활용 범위를 넓히겠다는 비전을 실제 사업으로 구현하는 것이 핵심 과제다.
정 회장은 지난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에서 "현대차그룹은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의 경계를 넘어 자율주행과 로보틱스, AI 팩토리 등 피지컬 AI 설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개별 기기의 지능화에서 출발해 제조 현장과 도시 인프라까지 AI로 연결하겠다는 청사진이다.
◆ 글로벌 판매 3위 기반…자동차·로봇·공장을 하나로
정 회장 취임 이후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완성차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왔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약 727만대를 판매해 토요타그룹과 폭스바겐그룹에 이어 글로벌 판매 3위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에서도 폭스바겐그룹을 앞서며 수익성을 높였다.
이 같은 성과는 미래 사업 투자의 기반이 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자율주행, 로보틱스를 각각 육성하는 데서 나아가 제조와 모빌리티, AI 역량을 하나의 사업 체계로 연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월 CES 2026에서 인간 중심의 AI 로보틱스 생태계 전략을 공개했다. 제조 현장에서 인간과 로봇의 협력을 확대하고, 그룹사의 역량과 글로벌 AI 기업의 기술을 결합하는 것이 골자다.
7월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에서는 이 구상을 공장과 도시로 확장했다. 자동차와 로봇 등 개별 기기를 지능화한 뒤 물류·생산·품질 등 제조 공정을 AI로 연결하고, 궁극적으로 에너지와 모빌리티 등 도시 인프라를 유기적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 투자도 이어왔다. 현대차그룹은 2020년 자율주행 합작사 모셔널을 설립하고, 2021년 보스턴다이나믹스를 인수했다. 2022년에는 포티투닷을 인수해 차량 소프트웨어와 자율주행 기술 개발을 강화했다.
지난 9월에는 보스턴다이나믹스가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 '로보틱스 메타플랜트 응용 센터(RMAC)'를 열었다.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실제 제조 현장과 같은 환경에서 작업을 학습하고 검증하는 시설이다. 로봇의 기술 시연을 넘어 생산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역할을 맡는다.
◆ 국내 125조·미국 260억달러…미래 사업과 공급망 동시 강화
현대차그룹은 미래 기술 확보와 생산 기반 강화를 위한 국내외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국내에는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125조2000억원, 미국에는 2025년부터 2028년까지 4년간 260억달러를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AI와 로보틱스, 자율주행 등 미래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핵심 생산 거점을 강화하려는 전략이다.
국내에서는 새만금 AI 밸리가 대표적이다. 현대차그룹은 전북 새만금에 약 9조원을 투자해 AI 데이터센터와 로봇·부품 클러스터, 수전해 플랜트, 태양광 발전, AI 수소시티 등을 구축할 계획이다. AI와 로봇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에너지 기반을 함께 조성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영남권에는 올해부터 10년간 42조원을 투자해 AI 기반 제조와 미래 항공·우주, 에너지 인프라 등을 아우르는 첨단산업 거점을 육성한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미국에서는 철강과 부품, 완성차를 연결하는 현지 공급망 구축에 나서고 있다. 현대제철은 지난 9월 4일 현지시간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 '현대제철-포스코 루이지애나 전기로 제철소(HPLS)' 기공식을 열었다. 총 58억달러를 투입해 연간 270만t의 강판 생산능력을 갖추고, 2029년 양산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다.
HPLS는 현대제철과 포스코, 현대차, 기아가 참여하는 합작 사업이다.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 조지아 공장, HMGMA에 더해 자동차용 강판 공급 기반까지 확보함으로써 미국 내 생산 체계를 강화하게 된다.
지난해 준공한 HMGMA는 AI와 로봇, 자동화 기술을 결합한 제조 혁신의 거점이다. 현대차그룹은 이곳에서 생산 공정을 소프트웨어로 연결하고, 수요와 차종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제조 체계를 고도화하고 있다.
◆ 엔비디아·웨이모와 협력…피지컬 AI 사업화 속도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력도 피지컬 AI 전략의 한 축이다.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와 AI 인프라 및 자율주행·로보틱스 분야에서 협력하고, 웨이모와 자율주행 생태계를 확대하고 있다. 보스턴다이나믹스는 구글 딥마인드와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을 위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축적한 제조·모빌리티 역량에 빅테크의 AI 기술을 결합해 개발과 현장 적용의 속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자동차와 로봇을 실제로 생산하고 운영하는 경험을 AI 사업의 경쟁력으로 연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술 인재 확보에도 나섰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9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HMG 테크 탤런트 포럼'을 열고 AI와 로보틱스, 자율주행, 스마트 제조 등 미래 기술 전략을 공유했다. 북미 기술 인재와 그룹 임직원 등 약 380명이 참석했다.
조직문화도 미래 사업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바꾸고 있다. 정 회장은 양재사옥 로비 개편과 타운홀 미팅 등을 통해 임직원 간 소통을 확대하고, 디지털 전환(DX)과 AI 전환(AX)을 추진해 업무 방식의 변화를 독려해왔다.
데이터와 AI를 일부 기술 조직의 도구가 아니라 그룹 전반의 업무 역량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목표다. 사업 간 경계를 넘는 협업과 빠른 의사결정 역시 피지컬 AI 비전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과제로 꼽힌다.
◆ 제네시스·수소도 확장…미래 비전을 성과로 연결해야
핵심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지난해 출범 10주년을 맞은 제네시스는 전동화와 고성능, 모터스포츠를 중심으로 다음 성장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는 국제자동차연맹(FIA) 월드 인듀어런스 챔피언십(WEC)에 진출했다.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은 두 대의 GMR-001 하이퍼카를 투입해 글로벌 내구레이스 무대에서 기술과 운영 경험을 쌓고 있다.
정 회장은 르망 24시 현장을 찾아 레이싱팀을 격려하고, 모터스포츠를 통한 기술 역량 축적과 브랜드 경쟁력 강화에 힘을 실었다.
지난 8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브랜드 최초의 초대형 전동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GV90'를 공개했다. 정 회장은 월드 프리미어에 참석해 제네시스의 럭셔리 철학과 전동화 기술을 결합한 플래그십 모델의 방향을 제시했다.
제네시스는 유럽 판매 거점을 확대하고 인도와 아세안 시장 진출을 추진해 2030년까지 전 세계 40여개국에서 연간 35만대를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수소 사업에서는 비즈니스 플랫폼 'HTWO'를 중심으로 생산부터 공급, 활용까지 연결하는 생태계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HTWO ENERGY 청주'를 준공하고, 홍콩 수소 생태계 조성 협력 등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시장으로 사업 기반을 넓히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다음 과제는 대규모 투자와 기술 협력을 실질적인 사업 성과로 연결하는 것이다. 로봇과 자율주행 기술의 현장 적용을 확대하면서 투자 효율과 수익성을 확보해야 한다. 생산 방식의 변화에 맞춘 노사 협력 기반을 강화하는 일도 중요하다.
정 회장이 제시한 피지컬 AI 비전은 현대차그룹의 사업 범위를 자동차 밖으로 넓히는 전략이다. 지난 6년간 쌓은 완성차 경쟁력이 미래 사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다음 성장 단계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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