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고인원 기자= 국제유가가 1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에너지 휴전' 선언과 러시아산 디젤(경유) 공급 확대 기대에도 불구하고 장 초반 하락세를 뒤집고 상승 전환했다.
러시아산 에너지 공급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에 장 초반 유가가 1.5%가량 하락했지만, 휴전의 실효성을 둘러싼 의문이 커지고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과 미국 허리케인에 따른 공급 차질 우려가 부각되면서 다시 상승 압력을 받았다.
국제유가 기준물인 12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은 미 동부시간 오전 7시(한국 시간 오후 8시) 기준 배럴당 105달러 선에 거래되고 있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11월 인도분 선물도 배럴당 92.83달러로 올라섰다. 두 유종 모두 장 초반에는 약 1.5% 하락했지만 이후 낙폭을 모두 만회했다.
◆ 트럼프, 러시아산 디젤 공급 확대 발표…휴전 실효성은 불투명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에너지 기반시설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는 '에너지 휴전'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에너지 휴전이 즉시 발효된다. 양측 모두 합의했다. 이를 위반하지 말라"고 밝혔다.
그러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휴전 구상을 환영하면서도 러시아 역시 이를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휴전 발표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반시설에 대한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2일 연설에서 "오늘 아침 내내 러시아의 샤헤드 드론이 키이우와 다른 우크라이나 도시 상공으로 계속 진입하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이것이 트럼프에 대한 푸틴의 대답"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국영 에너지기업 나프토가스도 러시아의 드론 공격으로 하르키우 지역 가스 생산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핵심 장비가 손상됐다고 밝혔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에너지 휴전과 관련한 접촉이 계속되고 있으며 적절한 시점에 추가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합의가 정유시설에만 적용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러시아산 디젤 공급 확대도 시장의 주요 관심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러시아산 디젤 공급 확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발표된 계획에 따르면 러시아는 디젤 30만t 이상을 즉시 공급하고 11월에는 50만t, 이후에는 100만t을 추가 공급할 예정이다. 러시아 정유시설의 가동 상황에 따라 300만t을 더 공급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전체 공급 예정 물량은 480만t 이상이다.
다만 이 같은 물량이 실제로 시장에 공급되기까지는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전 석유 부문 책임자 닐 앳킨슨은 "실제로 거론되는 물량은 매우 적다"며 "이번 합의가 시장을 의미 있게 움직일 만한 규모는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휴전 시도가 반복적으로 무산됐다는 점을 언급하며 지나친 기대를 경계했다.
◆ 중동 긴장 여전…이란·사우디 외교 접촉에도 공급 불안 지속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도 국제유가의 하락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통신사에 따르면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아라비아 외무장관과 전화 통화를 하고 최근 역내 긴장 고조 상황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알자지라는 아라그치 장관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 후티 반군 간 대화가 시작될 수 있도록 이란이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외교적 접촉에도 불구하고 중동 지역의 공급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싱가포르 대화은행(UOB)은 이날 보고서에서 지난 10일 예멘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공항을 미사일로 공격해 12명이 사망하고 300명 이상이 부상한 사건을 지적했다.
UOB는 "후티 반군의 리야드 공항 공격으로 중동 지역의 위험 프리미엄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미국과 이란 간 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동 원유 수송과 에너지 시설에 대한 추가 공격 가능성이 남아 있어 국제유가의 변동성이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 美 허리케인도 공급 차질 우려…유가 상승 압력 지속
미국 멕시코만으로 접근하는 허리케인 이사이아스(Isaias)도 국제유가의 상승 요인으로 꼽힌다.
허리케인 이사이아스는 최대 풍속 시속 120마일(약 193㎞)의 강풍을 동반한 3등급 허리케인으로 강화되면서 미국 걸프 연안의 에너지 생산시설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 생산업체들이 안전을 위해 해상 원유 생산을 줄이면서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UOB는 "허리케인 이사이아스가 미국 걸프 연안에 접근하면서 에너지 생산업체들이 해상 생산량을 줄이도록 압박하고 있어 국제유가에 대한 상승 압력이 지속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국제유가는 러시아산 디젤 공급 확대와 에너지 휴전 기대라는 하락 요인에도 불구하고 중동의 지정학적 위험과 미국의 생산 차질 가능성이라는 상승 요인이 맞서는 상황이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에너지 휴전의 실제 이행 여부와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 미국 멕시코만 원유 생산시설의 피해 규모가 단기 유가 흐름을 좌우할 주요 변수로 꼽힌다.
koinwo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