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조승진 기자 =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노동시간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 여부를 놓고 상반된 내용의 초광역특구법안을 하루 차이로 사실상 동시에 발의하면서 야당을 넘어 범여권과 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3대 메가 프로젝트 지원 핵심 법안인 초광역특구법의 빠른 제정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주 52시간 예외 허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예외를 허용하는 법안과 금지하는 법안을 둘 다 발의한 후 여론 수렴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겠다는 민주당 지도부의 '고육지책'이지만 정치권 반응은 차갑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사회적 합의 없이 모순되는 두 법안을 내놓은 데 대한 문제 제기가 나왔다. 조국혁신당과 진보당 범여권은 노동기본권 후퇴를 우려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않은 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52시간 특례 '허용' 법안과 '금지' 법안 하루 차이로 각각 발의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지난 20일과 21일 노동시간 특례 조항의 포함 여부가 다른 두 건의 초광역특구법안을 각각 발의했다.
초광역특구법은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의 3대 메가 프로젝트 지원 법안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을 하나의 광역 경제권으로 묶어 전략산업 특구를 조성하고 투자 기업에 재정·금융·세제 지원과 규제 특례 제공을 담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인 박상혁 의원이 지난 20일 대표 발의한 법안에는 근로소득 상위 3%에 해당하는 연구개발 인력에게 주 52시간제 예외를 허용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조항이 포함됐다.
해당 법안에는 기간제 노동자 사용 기간을 기존 2년에서 최대 4년으로 확대하고 외국인 투자 기업에 무급 휴일을 허용하는 노동특례도 담겼다.
하루 뒤인 지난 21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인 최기상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주 52시간제 예외를 비롯한 노동특례 조항이 제외됐다.
◆민주당 내부서도 비판 목소리…"경솔한 간 보기"
집권 여당에서 노동시간 특례를 허용하는 법안과 허용하지 않는 법안이 '전략적으로' 동시에 발의되며 당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5선 중진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두 가지 법을 낸 것은 조금 경솔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법안을 내겠다는 예고를 하면서 노동계와 산업계가 더 대화를 하는 사회적 합의가 되도록 노력했어야 한다"며 "간보기를 하고 있고 너무 빨랐다"고 했다.
모순 법안 동시 발의가 여론을 떠보는 것으로 비칠 수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했다.
한국노총 출신의 권미경 민주당 최고위원도 지난 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동계의 반발을 전하며 우려를 표했다.
권 최고위원은 "양대 노총(민주노총·한국노총)이 초광역특구법 발의를 주 52시간제 예외 등 이른바 노동 특례 강행 추진으로 읽고 신뢰가 훼손됐다고 비판하고 있다"며 "진솔한 대화를 통해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당부드린다"라고 했다.
◆조국혁신당·진보당 "노동 개악"...국민의힘 "입법 면피" 비판
범여권과 야당에서는 민주당 이상의 비판이 제기됐다.
조국혁신당은 "노사정 사회적 대화 중 법안부터 들이미는 여당의 '여론 간보기' 꼼수를 중단해야 한다"면서 "근거 없는 주 52시간 특례는 법안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진보당은 "노동 특례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노동 개악"이라고 직격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노동시간 특례에 대한 예외 여부를 모두 법안으로 내놓은 것은 집권 여당으로서 책임을 회피하는 행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같은 사안의 찬성안과 반대안을 한 정당이 당 차원에서 함께 내놓는 것은 입법이 아니라 입법 면피"라며 "앞면이 나와도 민주당, 뒷면이 나와도 민주당이라면 그것은 입법이 아니라 동전 던지기"라고 꼬집었다.
민주당이 법안 처리 시점을 정하지 않고 숙의를 이어가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최 수석대변인은 "시한 없는 숙의는 결국 간보기"라며 "집권 여당은 숙의의 사회자가 아니라 국정 운영의 책임 당사자다. 입장을 내놓아야 비로소 토론이 시작되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생긴다. 입장부터 내놔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민의힘은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 자체에는 찬성하는 입장이다. 최수진 원내수석대변인은 "최첨단 기술과 연구소 직종 관련해 실제 주 52시간제가 의미가 없다"며 "이번 기회에 주 52시간제가 풀어져야 한다"고 했다.
◆김민석 "합리적 대안 마련"…정부, 노사정 논의 계속
민주당 지도부는 노동계와 산업계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한 뒤 병합심사를 통해 최종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는 20일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법안의 주요 쟁점인 노동시간 특례 등을 둘러싸고 각계각층에 다양한 의견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며 "각계의 목소리를 폭넓게 듣고 향후 병합 심사를 통해 최종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한 원내대표는 "처리 시점을 못 박지 않고 충분한 숙의와 토론을 거치겠다"고 강조했다.
김민석 대표는 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첨단 연구개발 분야의 노동시간 제도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가 있음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며 "신속한 논의를 통해 노동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합리적 대안을 만들어내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노동특례를 둘러싼 노사 간 이견을 조율하기 위해 지난 9월 18일 차관급 사전준비회의를 열고 사회적 대화에 착수했다. 이후 5차례 실무협의체 회의를 진행했으며 노사정은 오는 28일 6차 회의에서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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