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국제유가가 사우디아라비아를 겨냥한 공격으로 중동의 에너지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면서 급등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출량이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했지만, 이란과 후티 반군의 공격이 이어지면서 지정학적 위험 프리미엄이 유가를 지지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12월물은 2.32달러(2.4%) 상승한 99.47달러를 기록했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12월물은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4.35달러(4.0%) 오른 113.17달러에 마감했다. 브렌트유 종가는 5월 4일 이후 최고치다. 브렌트유는 일주일 사이 세 번째로 기술적 과매수 구간에 진입했다.
사우디에서 인명 피해를 동반한 공격이 잇따르면서 중동의 군사적 긴장이 다시 부각됐다. 사우디 아람코의 샤이바 유전에서는 드론 공격으로 2명이 사망했으나 운영에는 차질이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로이터통신은 아람코가 다란 본사 직원들에게 대피를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담맘의 킹파드 국제공항을 겨냥한 공격에서도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예멘 후티 반군은 지난 48시간 동안 사우디의 얀부 항구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에너지 자문업체 리터부시앤드어소시에이츠는 보고서에서 미국 중간선거 이후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동 공격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후티 반군의 사우디 기반 시설 추가 공격으로 지정학적 위험 프리미엄이 확대되면서 유가가 반등했다고 분석했다.
이란과 연계된 후티 반군은 홍해 입구의 주요 해상 운송로인 바브엘만데브 해협 방향으로 진격해 왔으며, 예멘 정부를 지원하는 사우디 주도 연합군과 충돌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은 사우디 주재 미국 대사관의 일부 직원과 가족들에게 출국을 지시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다음 달 미국 중간선거 이후 이란에 대한 추가 공격 계획을 마련했다는 뉴욕타임스(NYT) 보도까지 나오면서 역내 분쟁 확대 우려가 커졌다.
PVM 오일의 타마스 바르가 애널리스트는 중동의 원유 수출량이 분쟁 이전 수준을 웃돈다는 보도에도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공격과 사우디 및 석유 기반 시설을 겨냥한 후티 반군의 공격이 공급 우려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CIBC 프라이빗 웰스 그룹의 레베카 바빈 선임 에너지 트레이더는 지속적인 군사 행동과 중간선거 이후 긴장이 재차 고조될 위험이 유가의 하방을 지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시장이 상승세를 이어가기 어려운 동시에 매도세 역시 확신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모간스탠리는 지난주 중동의 원유 수출량을 하루 약 1700만 배럴로 추산했다. 시장조사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이란 전쟁 발발 전 12개월간 중동의 원유 수출량은 하루 평균 약 1800만 배럴이었다.
◆ 리비아 유전 생산 차질…러시아산 에너지 공급도 변수
리비아에서도 원유 생산 차질이 발생했다. 리비아 국영석유공사(NOC) 사장은 하마다 및 타하라 유전에서 자위야 항구로 이어지는 송유관 밸브가 폐쇄돼 두 유전의 생산량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미국 정유업체 발레로 에너지는 이날 사상 최대 분기 이익을 발표하며 월가 예상치를 웃돌았다. 이란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연료 공급 차질이 3분기 정제마진을 끌어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도 에너지 시장의 변수로 남아 있다. 러시아는 밤사이 키이우에 탄도미사일 공격을 가했고, 우크라이나는 모스크바를 향해 수백 대의 드론을 발사했다.
러시아는 다음 달 미국의 중재로 우크라이나와의 협상을 재개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11월 초 협상이 열리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2025년 미국과 사우디에 이어 세계 3위 원유 생산국이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산 에너지의 글로벌 시장 유입을 제한한 제재는 국제유가를 지지해 왔다. 반대로 전쟁 종식 합의로 러시아의 원유 수출이 늘어날 경우 공급 확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 유가발 인플레 우려에 금값 2개월여 만에 최저
금 가격은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와 미국의 금리 인상 전망에 밀려 2개월여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12월 인도분 금 선물은 2.2% 내린 온스당 4060.4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현물 금 가격은 한국시간 23일 오전 3시 5분 기준 2.4% 하락한 온스당 4041.39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8월 3일 이후 최저치다.
중동의 공급 차질 우려에 유가가 급등한 점이 금값을 압박했다.
하이리지퓨처스의 데이비드 메거 금속 트레이딩 담당 이사는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이에 따라 연준이 금리를 계속 인상할 수 있다는 우려도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주 발표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시장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통화긴축 우려를 키웠다. 연준은 오는 27~28일 열리는 FOMC 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시장에서는 이후 금리 인상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 툴에 따르면 시장은 12월 금리 인상 가능성을 78%로 반영하고 있다. 오는 29일 발표될 미국의 PCE 물가지수도 향후 금리 경로를 가늠할 주요 지표로 꼽힌다.
인테사 상파올로의 이코노미스트들은 보고서에서 귀금속 시장이 뚜렷한 방향성을 찾기 어려운 가운데 높은 변동성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보석 수요가 급격히 위축되는 상황에서 금값은 향후 몇 분기 동안 온스당 평균 4200달러 부근에서 거래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kwonjiu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