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발 신용쇼크가 확산하고 있다. 네오클라우드 업계에서 시작된 불씨는 하이퍼스케일러 진영(빅테크)으로 옮겨붙었다. 시장은 이들의 장밋빛 성장 전망보다 부채위험에 한층 민감해졌다. 구멍 난 현금흐름과 높아진 조달금리에도, 빚을 더 끌어다 인프라를 확충하겠다는 경영진들을 향해 주주와 회사채 투자자들은 계속 경고를 보내는 중이다. AI 성장 신화에 가려졌던 장애물들도 새삼 존재감을 드러내며 경고의 데시벨을 높이고 있다. 자산시장 내 부(富)의 파괴를 동반하는 이러한 흐름은 자기실현적 위기의 속성을 지님과 동시에 실물경기로 전염 위험을 높인다.
[서울=뉴스핌] 이홍규 기자 =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가 사람·전력·정치(People·Power·Politics), 이른바 '3P'라는 복병을 만났다. 전력난이 주민 반대를 거쳐 선거 쟁점으로 번지자 가뜩이나 인력 부족과 부품 조달 차질로 난항을 겪던 데이터센터 가동 일정이 더 불투명해졌다. 회사채를 비롯한 신용시장 셈법도 복잡해졌다. 최근 시장금리 급등으로 AI 차입을 재점검하던 와중에 원리금을 돌려받을 재원인 임대료 유입 시점까지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어서다.
신용평가사 S&P글로벌레이팅스는 23일 지역 반대에 따른 건설 지연이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신용등급에 하향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완공이 늦어지면 데이터센터 사업자는 임대료 감면을 감수해야할 가능성이 있고 나아가 지연이 길어지면 임차인이 계약 자체를 해지하는 경우도 나올 수 있다는 점을 그 배경으로 들었다. 지연·취소 사례 146건 중 약 4분의 3이 지역 반대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등급 영향은 아직 제한적이라고 했으나 하향 가능성이 거론된 것만으로 신용시장의 불안을 가중할 수 있다.
◆어긋난 상환 시간표
AI 인프라 채권을 보유한 투자자에게 데이터센터 가동 지연은 손실 위험만 키우는 요인이다. 채권 투자자가 받는 것은 약정된 이자와 원금이 전부여서다. AI 수요가 늘어 데이터센터 사업이 큰 성공을 거둬도 이자가 더 붙지는 않는다. 반대로 가동이 늦어지면 상환 재원인 임대료 유입도 늦어져 정해진 만기에 원리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커진다 - 이자 지급일을 지키지 못하면 그자체로 디폴트다. 잠재 수요가 견조해 언젠가는 완공된다는 전망만으로 채권 투자자의 우려가 해소되지 않는 이유다.
데이터센터 차입이 불어나면서 채권 투자자가 노출된 지연 위험은 차입액에 비례해 커졌다. 빌린 돈이 클수록 임대료 없이 감당해야 할 이자도 늘어나서다. 소프트뱅크그룹이 투자한 개발사 SB에너지도 증권신고서에서 가동 지연 시 상쇄할 현금흐름 없이 건설비를 떠안는다고 밝혔다. 재무 여력이 부족해 지연에 취약한 차입자도 늘었다. 포브스에 따르면 올해 발행된 데이터센터 채권 약 800억달러 가운데 투기등급은 370억달러로 지난해의 4배를 웃돌았다.
상환 일정이 가장 먼저 어긋나는 자금은 건설 대출이다. 건설 대출은 만기가 통상 1~3년이고 완공 뒤 발행하는 장기 채권으로 상환된다. 가동이 늦어지면 장기 채권 발행 전에 만기가 돌아와 신용시장 불안 속에 연장을 협상해야 한다. 클라우드 업체 오라클의 불가항력 통지로 임대료 개시가 최대 3년 늦어질 수 있는 '프로젝트 주피터' 건설 대출(약 180억달러<최초 만기 4년·1년 연장 옵션 2회>) 채권은 1달러당 89~91센트에 호가돼 액면가를 밑돈다.
◆요금 불만→인허가 지연→선거 쟁점
상환 시간표를 어긋나게 하는 3P 제약은 연쇄적으로 이어져 있다. 모간스탠리는 20일 보고서에서 1조6000억달러 규모 AI 인프라 설비투자 계획의 핵심 제약으로 3P를 꼽았다. 전력난은 전기요금을 올려 주민 반대를 키웠고, 지역사회의 반발심은 전력 설비 인허가를 늦춘 데 이어 선거 쟁점이 돼 전력 확보를 더 어렵게 하는 규제로 이어졌다. 제약이 한 단계씩 더해질 때마다 회사채·대출 투자자가 따져야 할 지연 변수도 하나씩 늘었다.
데이터센터에 대한 주민(People) 반대는 전기요금 문제가 겹치면서 관련 부지 인근을 넘어선 쟁점이 됐다. 소음과 물 사용 문제는 인근 주민에 그치지만 전기요금 부담은 같은 전력망을 쓰는 가구 전체로 넓어진다. 미국 최대 전력망 PJM인터커넥션의 시장감시기관은 가계 요금에 반영되는 발전 용량 비용의 약 46%가 데이터센터 수요 때문이라고 추산했다.
주민 반대는 인허가 단계에서 데이터센터의 전력 확보(Power)를 가로막는다. 송전선과 변전소, 발전설비는 저마다 지방정부나 주정부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데이터센터워치에 따르면 상반기 최소 106개 프로젝트(약 1980억달러)가 지역 반대로 차단·지연됐다. 프로젝트 주피터에서도 반대 주민 소송 속에 뉴멕시코주 토지청이 발전설비용 가스관의 주 소유지 통과를 두 차례 거부했다. 오라클이 지난달 불가항력을 통지한 사유 가운데 하나다.
◆칩의 재고화와 임대료 지연
전력 연결이 늦어지면 수요나 설비 마련과 무관하게 임대료가 제때 들어오지 않는다. 임차인이 칩을 사들여도 전력이 없으면 가동할 수 없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CEO도 지난해 11월 전력 부족으로 칩을 설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간스탠리는 미국이 2028년까지 필요 전력의 약 3분의 1인 32GW(기가와트)가 부족할 것으로 추산했다. 정치적 반대로 연결이 늦어지면 부족분은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호주에서는 전력 공사 중단이 실적 전망 하향과 주가 급락으로 이어졌다. 배전사 제메나가 주민 반대와 지방의회 동의 보류로 멜버른 데이터센터 전력 공사를 중단하면서다. 운영사 넥스트DC는 21일 이번 회계연도 EBITDA(영업이익에 감가상각비를 더한 값) 전망을 최대 4억1000만호주달러에서 2억6500만호주달러로 낮췄고 주가는 당일 한때 45% 떨어졌다. 고객 보상·해지 위험에 놓인 넥스트DC는 불가항력 조항 적용도 검토 중이다.
주민 반대가 표심으로 이어지면서 데이터센터는 중간선거의 쟁점(Politics)이 됐다. 인허가와 전기요금에 관여하는 주지사와 지방의원, 일부 주의 공익사업위원이 선거로 뽑힌다. 오하이오주에서는 민주당 주지사 후보가 신규 데이터센터 조건부 중단을, 공화당 후보가 개발사의 재산세 전액 부담과 인근 주민 무료 전력 제공을 공약했다. 모간스탠리는 어느 당이 이기든 논쟁의 초점이 규제 여부에서 방식으로 옮겨갔다고 진단했다.
선거를 앞둔 주정부와 공익사업위원회는 대출 당시 가정하지 않은 전력 확보 비용과 담보를 데이터센터에 지우고 있다. 가계 전기요금 전가를 막겠다며 전력망 연결 조건을 바꾸면서다. 펜실베이니아주는 8월 데이터센터가 전력망 증설 비용을 부담하고 필요 전력을 자체 확보하도록 했다. 위스콘신주 공공서비스위원회가 신용등급 A- 미만 수요처에 재무 보증을 요구하자 오라클은 담보가 70억달러를 웃돌 수 있다며 소송을 냈다.
◆정치 변수에 복잡해진 셈법
정치 변수는 신용시장 셈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지연 기간을 과거 사례로 추정하기 어려워서다. 설비 납기나 공사 기간은 업계 경험으로 지연 폭을 가늠해 금리에 반영할 수 있다. 정치 변수는 선거 결과와 주별 결정에 따라 지연 여부부터 달라진다. 넥스트DC 공사 재개 시점도 11월28일 빅토리아주 선거 결과에 달려 있다.
주민 반대가 인허가와 전력 연결을 늦추는 사례가 잇따르자 대출기관들은 주민 여론까지 신용 심사에 반영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캐런 팡 인프라·지속가능금융 책임자는 대출을 결정할 때 따지는 사업 준비 상태에 인허가뿐 아니라 주민의 지지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데이터센터 채권 투자자들도 공사 진척도뿐 아니라 지역 정책 동향까지 따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3'P'의 다음 시험대는 11월3일 중간선거 결과다. 모간스탠리는 주지사부터 선출직 공익사업위원까지 데이터센터 규칙을 바꿀 수 있는 모든 선거를 대상으로 한 평가표를 보고서에 함께 실었다. 공화당이 압승하면 AI 투자 심리에 가장 유리하고 분점 정부는 대체로 중립, 민주당 압승은 가장 불리하다는 판단이다. 보고서가 주목한 주에서 규칙 변경의 영향을 받는 데이터센터는 이미 짓고 있는 물량을 포함해 약 60GW로 텍사스주만 24GW에 이른다.
bernard0202@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