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송현도 기자 = 민간 주택시장에서 고금리 기조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가 장기화되면서, 주요 대형 건설사들이 그동안 상대적으로 외면하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공주택 사업으로 대거 복귀하고 있다. 과거에는 낮은 수익성을 이유로 관심 밖에 놓였던 공공 시장이 최근에는 '저(低)리스크'의 안정적인 수주처로 재평가되며, 건설업계의 수주 지형도 역시 빠르게 변화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흐름은 통합형 발주를 중심으로 한 대형 건설사 위주의 재편과 도심복합사업 확대라는 두 가지 축을 따라 내년 공공 공사에서도 이어질 전망이다. 여기에 도급형 민간참여사업이 새롭게 제시되면서,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한 건설사들의 수주 기회는 한층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통합형 발주' 나비효과…대형사 컨소시엄 집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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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프=AI] |
1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해 LH 공공주택 시장은 사업성 확보와 관리 효율을 위해 인접한 블록을 하나로 묶는 '통합형 민간참여 공공주택사업(민참사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대형사들이 대거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참여 중이다. 주요 사업지들이 2~3개 블록을 묶는 '통합형'으로 발주되면서 수천억원에서 조 단위 자금 동원력이 필수적인 1군 건설사들의 무대가 형성됐다는 분석이다.
지난 12일 공시된 대우건설의 '수원당수2 지구' 수주 사례가 대표적이다. 대우건설은 B-1, A-1, A-3 등 3개 블록을 통합 개발하는 이 사업(총사업비 약 5622억원)에서 약 2980억원(지분율 53%)을 확보하며 주관사로 나섰다. 수주액은 지난해 말 연결 매출액 대비 약 2.83% 수준이지만, 기성불 조건으로 공사비 회수가 확실하다는 장점이 있다. 대우건설은 수원당수지구뿐만 아니라 지난 11일 광명시흥 A2-5BL과 A1-1BL, B1-7BL 역시도 통합형 민참 사업 형태로 4610억8574만원(지분율 51%)의 계약을 따냈다. 불과 이틀 사이에 7500억을 넘는 수주액을 민참 사업에서 창출한 것이다.
이는 미분양 리스크가 적은 반면 사업성이 뛰어난 수도권 지역 공공 사업 참여 타진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올해 대우건설이 분양한 하남교산, 남양주왕숙 등은 3기 신도시 중에서도 사업성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곳"이라며 "건설사가 사업에 참여하려면 미분양 리스크가 없어야 하는데, 해당 지역들은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돼 가격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에 시장의 인기를 얻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우건설은 원래부터 공공주택 분야를 계속 두드려왔고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며 "내년에는 도시정비, 자체 사업, 공공사업을 두루 합쳐 약 1만8000가구 정도를 공급할 계획으로, 공급 실적 1위 자리를 공고히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우건설을 비롯해 올해 대형사가 참여한 통합형 민참 사업은 수원당수2(대우), 평택고덕(현대), 광명시흥(DL, GS) 등이다. 현대건설 역시 평택고덕국제화계획지구에서 A-12, A-27, A-65블록을 묶는 총사업비 7700억원 규모의 사업을 따냈다. 현대건설은 60%의 지분(약 4630억원)을 확보, 2032년까지 장기적인 매출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 DL이앤씨와 GS건설 또한 각각 광명시흥(8120억원 규모)과 시흥거모 지구에서 대규모 통합형 사업을 수주하며 수도권 서부 벨트의 지배력을 강화했다.
◆ 잇단 수주 도심복합사업, '미운 오리'서 '황금알'로
과거 사업성 부족으로 외면받던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도심복합사업)'도 올해 건설사들의 새로운 수입원으로 등극했다. 서울 핵심 입지에 있어 분양 리스크가 낮은 데다, 정부의 지원으로 사업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서울 은평구 증산4구역은 단일 도심복합사업 중 최대 규모인 1조9435억원의 공사비를 기록하며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곳은 DL이앤씨(53%)와 삼성물산(47%) 컨소시엄이 시공권을 따냈다. 특히 정비사업 수주에 보수적이던 삼성물산의 참여는 도심복합사업의 안정성이 검증됐음을 시사하는 강력한 지표로 해석된다.
이 밖에도 포스코이앤씨는 영등포구 신길2구역(총사업비 약 1조2000억원)을, GS건설은 도봉구 쌍문역 서측 지구(공사비 5908억원)를 각각 수주하며 서울 내 알짜 입지를 선점했다. 이들 사업장은 '자이', '더샵', '래미안' 등 프리미엄 브랜드를 적용, 공공주택의 품질을 민간 분양 아파트 수준으로 끌어올릴 전망이다.
◆ 2026년 '도급형 민참' 온다…"리스크 제로에 베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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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프=AI] |
업계는 올해가 대형 건설사들의 공공시장 복귀가 본격화된 해였다면, 내년은 '도급형 사업의 일반화'가 가시화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 건설사들의 잇따른 '공공행(行)'은 단순한 일감 부족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불확실성이 커진 시장 환경 속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전략적 판단이라는 분석이다.
정부의 '9·7 주택공급 확대 방안'과 이에 맞춘 LH의 정책 방향 역시 2026년을 기점으로 도급형 민간참여사업 비중 확대를 예고하고 있다. 기존 분양형(손익공유형) 사업이 민간 사업자에게 미분양 리스크를 일정 부분 부담시키는 구조였다면, 도급형 사업은 LH가 분양 책임과 자금 조달을 전담하고 민간 건설사는 시공에 따른 확정 이익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결국 대형사들의 '공공행' 러시는 일시적 현상이 아닌 장기적인 생존 전략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시장 상황을 보면 일반 민간 시행 사업들은 자금 조달 문제 등으로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면서 "반면 LH나 경기주택도시공사(GH)가 발주하는 공사는 대금 지급이 확실해 그런 리스크가 전무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정부의 부동산 대책 역시 공공이 시행을 주도하면서 소비자가 선호하는 1군 브랜드를 적용하도록 유도하고 있어, 건설사들이 참여할 유인이 충분해졌다"고 덧붙였다.
실제 LH는 2026년 3기 신도시(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등)와 평택고덕 등을 중심으로 전년 대비 32.2% 증가한 2만9000가구 규모의 공공분양을 계획하고 있다. 특히 상가·업무 용지를 주택 용지로 전환해 공급하는 수원당수, 파주운정3 지구 등의 추가 물량은 건설사들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건설사들의 향후 성패는 올해 확보한 수조원대의 수주 잔고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매출화하고, 2026년 열릴 '도급형 시장'에서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느냐에 달려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큰 수익을 좇기보다는 확실한 마진을 챙기는 것이 생존의 키워드가 됐다"며 "내년 3기 신도시 본청약 물량 확대와 맞물려,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려는 건설사들의 공공수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doso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