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상용 기자 = 미국과 이란 사이에 다시 무력충돌이 벌어진 직후인 현지시간 8일 월가 분위기를 소시에떼 제네럴의 분석팀은 "또 시작이군(Here we go again)"이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이를 두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6월 전쟁종식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 후 전개됐던 월가의 일명 '평화 트레이드(Peace Trade)'가 호르무즈 해협의 총성으로 다시 충돌을 빚고 있다고 표현했다.
MOU 체결 후 두드러졌던 유가 하락이 인플레이션 우려를 잠재워 미국 가계의 부담을 덜고 연방준비제도(Fed)의 매파성을 누그러뜨려, 부채를 일으켜 인공지능(AI) 설비투자를 이어가는 빅테크들에게도 단비가 될 것이라던 전망에 제동이 걸렸다는 이야기다.
간밤 뉴욕시장 움직임은 이러한 '평화 트레이딩' 되감기의 전형이었다. 전일 아시아 거래에서 뜀박질을 했던 유가는 계속 고도를 높여 장중 한때 브렌트유 선물이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섰고, 글로벌 자금시장의 벤치마크인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4.6%에 다가서는 한편 다우지수는 1% 넘게 하락했다. 선제 조정을 받았던 반도체주들의 반등으로 나스닥지수 홀로 0.2% 올랐다.
WSJ는 "수시로 비슷한 소규모 충돌이 외교적 노력을 방해해왔지만, 그간 그러한 소동의 대부분은 시장이 쉬는 주말에 벌어져 투자자들이 차분하게 상황을 살필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면서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고 했다. 실제 월가는 이번 교전과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발언이 가져올 충격을 실시간으로 평가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는데, 그게 확전의 신호탄이 될지 아니면 이전에도 그러했듯 미완의 형태로 봉합될지 파악하느라 분주하다고 신문은 전했다.
코헨앤스티어스의 천연자원 주식 부문 책임자인 타일러 로젠리히트는 "우리는 항상 해결 과정이 험난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번 난관은 상당히 크다"며 "어떤 것도 확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문에 따르면 컨설팅 회사 리스타드 에너지의 지정학 분석 책임자인 호르헤 레온은 이메일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의 통항이 사실상 멈췄다. 이는 미국과 이란의 어떤 성명서보다도 작금의 위험 인식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락가락하는 발언에 현혹되지 말라는 조언, 금융시장이 비명을 지를 때면 등장하는 트럼프의 '타코(TACO : 트럼프는 항상 겁을 먹고 물러선다)' 본능을 간과하지 말라는 조언도 뒤따른다. 이는 다음 랠리 시점을 저울질하며 기회를 엿보는 월가 용자(勇者)들의 주문이다.
에드워즈자산운용의 최고 투자책임자인 로버트 에드워즈는 "유가 급등과 주식과 국채 가격의 동반 하락세(주가 하락+국채금리 상승)가 맞물린 모습은 이란 전쟁 초기와 유사하다"며 이후 그런 상황은 (트럼프의 TACO로) 반전됐는데 지금 상황도 이를 시사한다고 했다. 그는 "향후 몇 주 증시가 하락한다면 매수 기회"라고 외쳤다.
실제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수시로 공수(攻守) 포지션을 바꾸는 트럼프의 언행은 이번에도 확인되고 있다.
미국 동부 현지시간 8일 새벽 4시, 튀르키예 현지시간 오전 11시 무렵 트럼프는 기자들에게 "이란과 양해각서는 끝장났다"고 말했다. 이란 수뇌부를 향해 "그들은 미쳤다. 역겹다. 비열하다. 쓰레기이자 사악한 인간들이다"라는 막말도 아낌없이 쏟아냈다. 미국과 이란이 한바탕 공격을 주고받은 뒤 기자들이 트럼프에게 양해각서(MOU)의 효력과 향후 협상에 대해 묻자, 나온 반응이다.
그리고 미국 현지시간 8일 정오 무렵을 지나자, 트럼프의 어조는 다시 일변했다. 역겨운 쓰레기라고 했던 이란 지도자들에 대해 "그들을 알게 되면서 합리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그들(이란 지도자들)은 이성적이다"라고 했다. 이어 전면전을 재개할 가능성에 대해 선을 그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뉴욕 장 마감 후 몇 시간이 흐른 뒤 트럼프는 다시 협박 모드로 기어를 바꿨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가 이란에 추가 공습을 시작했다고 발표한 뒤 트럼프는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우리는 방금 그들을 매우 강하게 타격했다"며 "그들이 우리를 공격할 때마다 우리는 20배로 되갚아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의 혁명수비대도 그의 화법을 모르지 않는다. 유가가 뜀박질할수록, 트럼프가 마음 편히 엄포를 놓고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심리적 공간도 줄어들 것이라는 점 또한 잘 안다. 혁명수비대가 이를 잘 알고 있다는 점 때문에(유가를 밀어올릴수록 이란의 협상 우위가 복원된다는 것을 혁명수비대도 잘 알기에) 원유시장은 마음을 놓지 못한다.
유가가 어느 선까지 올라야 진성 타코(TACO)가 등장할지에 대해 시장은 알지 못하고 어쩌면 트럼프 자신도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원유시장과 금융시장의 발작 모멘트를 피하기 위해) 더 자주 어조를 바꾸며 엄포와 협박술의 공간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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