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고인원 기자= 비트코인이 14일 미국 기술주 급락과 국제유가 상승,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우려에도 반등하고 있다.
암호화폐 시장은 위험자산 전반의 투자심리 악화와 달리 상대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시장의 시선은 15일 예정된 미 상원의 '클래리티법(CLARITY Act)' 표결로 향하고 있다.
한국 시간 오후 7시 25분 기준 비트코인(BTC) 가격은 24시간 시간 전에 비해 약 1.68% 상승한 7만7795달러를 기록했고, 이더리움(ETH)도 1.75% 오른 2516달러를 나타냈다.
이는 같은 시간 기술주를 비롯한 다른 위험자산이 일제히 약세를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 기술주 급락에도 비트코인은 반등
이날 미국 기술주와 인공지능(AI) 관련주는 개장 전 거래에서 큰 폭으로 하락했다.
주말 동안 주요 AI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AI 개발 속도에 잇따라 경고음을 낸 것이 투자심리를 압박했다.
앤스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CEO)는 안전 조치가 AI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도록 업계가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픈AI(OpenAI)의 샘 올트먼 CEO와 그록(Grok)을 개발한 xAI의 일론 머스크도 이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앤스로픽은 향후 기업공개(IPO)를 위해 나스닥을 선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올트먼은 오픈AI가 2026년에는 상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인했다.
AI 산업을 둘러싼 경계감은 아시아 증시에서부터 나타났다. 한국 코스피는 3% 하락했고 AI 기업에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하는 SK하이닉스는 6% 급락했다.
미국에서도 나스닥100지수를 추종하는 인베스코 QQQ 상장지수펀드(ETF)가 개장 전 거래에서 1.7% 떨어졌다. AI 클라우드 인프라를 제공하는 '네오클라우드' 업체 네비우스(NBIS)와 코어위브(CRWV)는 7% 하락했고 샌디스크(SNDK)와 인텔(INTC)도 각각 5~6% 내렸다.
이처럼 기술주가 큰 폭으로 밀리는 상황에서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상승하면서 암호화폐 시장은 이날 주식시장과 차별화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
◆ 유가 100달러 돌파·연준 인상 전망은 부담
다만 암호화폐 시장을 둘러싼 거시경제 환경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브렌트유는 3% 가까이 상승해 배럴당 107달러를 기록했고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102달러를 웃돌았다. 유가 급등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다시 높여 연준의 긴축 전망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위험자산 전반에 부담을 주고 있다.
장기물 미 국채 수익률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5%를 소폭 밑돌았고 30년물은 5.341%를 기록했다.
시장은 연준이 다음 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25bp(1bp=0.01%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을 사실상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월가에서 마지막까지 금리 동결 전망을 유지했던 곳 가운데 하나인 골드만삭스도 지난 주말 기존 전망을 철회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자체 8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전망치를 0.26%로 소폭 끌어올리는 데 그쳤고 기본적인 인플레이션 전망에도 변화가 없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시장이 금리 인상 가능성을 약 90%까지 반영하고 있는 만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동결에 따른 금융시장 충격을 피하기 위해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 "물가 때문 아닌 월가 위한 인상" 비판도
연준이 실제로 금리를 올릴 경우 시장 기대에 끌려가는 결정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웰링턴-알투스의 제임스 손 수석 시장 전략가는 골드만삭스의 전망 변경을 두고 "월스트리트의 거울의 벽(Wall of Mirrors)"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인플레이션 전망에는 실질적인 변화가 없는데도 월스트리트를 진정시키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현재 물가 압력의 상당 부분이 유가와 공급 측 충격에서 비롯된 만큼 금리 인상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금리 인상으로 원유를 생산할 수도, 정제 능력을 확대할 수도, 차질이 빚어진 공급 경로를 복구할 수도 없다"며 "금리 인상은 수요와 투자, 고용, 가계의 구매력을 줄인다"고 말했다.
임금 상승률도 전년 대비 3.1%까지 둔화해 임금과 물가가 서로를 끌어올리는 악순환이나 에너지 충격이 물가에 고착되고 있다는 증거가 뚜렷하지 않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반면 KPMG의 다이앤 스웡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근원 CPI 상승세가 서비스 부문에 크게 집중돼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이른바 '슈퍼코어(super core)' 서비스 물가가 전월 대비 0.5%, 전년 대비 3% 상승했다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스웡크는 8월 PCE 물가지수가 전월 대비 0.4%, 근원 PCE가 0.3%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경우 근원 PCE의 연율 상승 속도는 3.4%에 달해 연준의 2% 물가 목표를 크게 웃돌게 된다.
그는 이에 따라 2027년 초까지 모두 세 차례의 금리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 비트코인 시선은 15일 클래리티법 표결로
같은 거시경제 불확실성 속에서 암호화폐 시장의 또 다른 핵심 변수는 15일 예정된 미 상원의 클래리티법 관련 첫 번째 클로처(cloture·토론 종결) 표결이다.
클래리티법은 미국 디지털 자산 시장의 규제 체계를 정비하기 위한 핵심 법안이지만 상원 통과에 필요한 60표가 확보됐는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지난주 공개된 최신 초안에는 민주당과 협상한 여러 타협안이 반영됐지만 핵심 쟁점인 윤리 규정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민주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암호화폐 관련 활동을 보다 강하게 제한할 수 있는 윤리 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도 스테이블코인 보유자에게 지급되는 수익률이 지역은행의 이자 지급 예금과 경쟁하면서 은행권을 압박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블록체인협회의 서머 머싱어 CEO는 "화요일 표결을 앞두고 낙관하고 있다"며 "이는 차세대 금융 혁신을 위한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막판 협상에도 불구하고 법안이 상원 문턱을 넘지 못할 가능성도 상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 60표 확보 불투명…실패하면 연내 입법 사실상 어려워
15일 표결이 클래리티법의 최종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막판 협상을 통해 60표 이상을 확보해 첫 관문을 넘더라도 이후 수정안 처리와 추가 토론 등 여러 단계의 입법 절차가 남아 있다. 반대로 협상이 계속될 경우 예정된 표결 자체가 연기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11월 중간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초당적 협상이 어려워지는 데다 상원이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시간도 빠르게 줄고 있다.
이달 안에 상원 처리가 마무리되지 못하면 법안은 선거 이후 레임덕 회기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국방수권법(NDAA) 등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법안에 클래리티법을 붙여 통과시키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마저 실패해 2027년 새 의회가 출범하면 현재 법안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코인베이스(Coinbase)의 브라이언 암스트롱 최고경영자(CEO)는 법안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규칙 제정을 통해 규제 공백을 메울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통과되면 좋다. 우리는 법을 갖게 된다"면서도 "통과되지 않더라도 좋은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규제기관의 규칙 제정만으로 의회가 만든 법률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규제 당국이 어떤 규칙을 내놓더라도 이해관계자들의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고, 소송이 장기화될 경우 향후 정권 교체 때까지 규제 불확실성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암호화폐 시장은 기술주 급락 속에서도 비트코인이 7만7000달러대를 지켜낼 수 있을지와 연준의 금리 인상 여부, 15일 클래리티 법 표결 결과를 동시에 주시하고 있다.
koinwo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