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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김현영 기자 = 인공지능(AI) 관련 투자 자금이 반도체에서 사이버보안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AI 인프라 투자의 수익성을 둘러싼 회의론이 커지면서 그동안 AI 랠리를 이끌던 반도체·하드웨어주가 흔들리는 사이 대규모 보안 취약점 사태와 AI 에이전트에 대한 통제 우려가 겹치며 사이버보안 기업으로 매수세가 몰린 것이다.
지난주 크라우드스트라이크(종목코드: CRWD)와 팔로알토 네트웍스(PANW) 주가는 각각 12.92%, 9.68% 뛰며 S&P500 편입 종목 가운데 최상위 성과를 기록했다. 반면 반도체 장비업체 램리서치(LRCX)는 공급 차질을 경고한 뒤 한 주 동안 15.47% 급락했다. AI 투자의 승자와 패자 구도가 끊임없이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 흔들리는 AI 인프라 투자 심리
변화의 출발점은 AI 지출에 대한 시장의 시선이 급격히 냉각된 데 있다. 최근 몇 주 사이 기술 업계 곳곳에서 우려가 한꺼번에 불거졌다.
먼저 클라우드 컴퓨팅 업체 코어위브(CRWV) 사태가 AI 인프라 구축이 얼마나 부채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드러냈다. 금리가 계속 오르는 환경에서 이 같은 차입 구조가 재무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목됐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AI 매출이 투자 규모를 정당화하지 못할 경우 2030년까지 3조5000억 달러가 넘는 AI 인프라 투자가 손상 처리될 위험이 있다고 추산하며 경고음을 더했다.
이런 불안은 메타 플랫폼스(META)의 실적 발표 직후 주가 흐름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메타가 21일(현지시간) 장 마감 후 내놓은 실적은 고무적이었고, 주가는 시간외 거래에서 급등했다. 그러나 향후 지출 약정을 1250억 달러 늘려 총 8250억 달러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의 무게가 시장에 서서히 반영되면서 분위기는 22일 개장 무렵 반전됐다. 메타 주가는 이날 6.1% 하락 마감하며 7월 이후 최악의 하루를 보냈다. 막대한 지출을 충당하려면 회사채를 추가 발행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에 메타의 5년물 신용부도스와프(CDS) 가격은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다.
같은 날 램리서치의 분기 실적도 투자자들을 실망시키면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6월 이후 최대 일일 낙폭을 기록했다. 메타가 데이터센터 구축에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붓는 대표적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클라우드 사업자)이고, 램리서치가 AI 수혜를 가장 크게 누려온 고성장 반도체 기업이라는 점에서 시장이 받은 충격은 컸다.
◆ 반도체·하드웨어주, 랠리 피로감 뚜렷
반도체 업종 전반으로 매도세가 번졌다. 지난주 램리서치의 경쟁사 KLA(KLAC)가 12.49% 하락한 데다가 AI 반도체·인프라 기업 세레브라스 시스템스(CBRS)가 8.16%, 크레도 테크놀로지(CRDO)가 14.77% 후퇴했다.
아마존(AMZN)·마이크로소프트(MSFT)·알파벳(GOOG) 등 하이퍼스케일러의 대규모 AI 투자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여겨져 온 반도체·하드웨어 기업들의 랠리가 이제는 숨 고르기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하드디스크 제조업체 웨스턴디지털(WDC)은 이런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회사는 22일 시장 예상을 크게 웃도는 회계연도 1분기 실적과 함께 수익성 확대, 낙관적인 2분기 전망까지 내놓으며 하드디스크 호황이 정점을 지났다는 우려를 잠재우려 했다. 하지만 흔들리는 AI 투자 심리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3일 주가는 2.97% 내린 343.67달러에 마감했다. 올해 들어 100% 가까이 오른 종목이지만, 6월 18일 기록한 사상 최고가(799.87달러)와 비교하면 57.03% 밀려난 상태다.
AI는 막대한 데이터를 소비하는 동시에 만들어낸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은 당장 쓰지 않는 데이터를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에 저장하는데, 미국에서 HDD를 생산하는 기업은 웨스턴디지털과 씨게이트(STX) 두 곳뿐이다. 다만 HDD 사업은 경기 순환성이 강하기로 악명이 높아, 월가는 업체들이 여전히 가격을 올리고 마진을 넓힐 여력이 있다는 증거를 끊임없이 확인하려 한다.
문제는 가격 상승을 떠받쳐 온 공급 부족이 얼마나 이어질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웨스턴디지털 주가는 이달 초 일본 도시바가 2027 회계연도에 AI 데이터센터용 드라이브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릴 계획이라는 닛케이 보도 이후 한 차례 타격을 받았다. 어빙 탄 웨스턴디지털 최고경영자(CEO)는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업계와 우리 사업의 장기 펀더멘털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다"며 도시바의 증설이 고객사와의 가격 협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관측을 일축했다.
비용 측면의 우려도 남아 있다. 회사는 테라바이트당 생산 비용을 전년 대비 10% 절감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탄 CEO는 단기적으로는 진척이 이보다 더딜 수 있다고 인정했다. UBS의 티모시 아쿠리 애널리스트는 공급과 비용에 관한 웨스턴디지털의 메시지가 "다소 혼란스럽게" 느껴졌다며 시장의 시각이 점차 어두워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UBS는 '중립' 의견을 유지하면서 목표주가를 470달러에서 435달러로 낮췄다.
◆ PHP 취약점 사태, 사이버보안주에 불을 붙이다
반도체주가 흔들리는 사이 사이버보안 업종에는 강력한 촉매가 등장했다. 전 세계 웹사이트의 약 70%를 구동하는 프로그래밍 언어 PHP에서 치명적인 보안 결함이 드러난 것이다.
보안 연구기관 위즈리서치는 지난 21일 PHP 핵심 코드에서 여러 건의 치명적 취약점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를 악용하면 공격자가 서버를 장악하고 민감한 데이터를 빼내거나 웹사이트를 변조할 수 있다. PHP는 워드프레스, 드루팔, 마젠토 등 각종 출판·전자상거래 플랫폼의 기반 기술이어서 파장은 즉각적이었다.
PHP 개발진이 같은 날 패치를 배포했고, 각국 기업과 정부는 웹사이트를 서둘러 내리거나 업데이트하느라 분주했다. 미국 국가안보국(NSA)과 연방수사국(FBI)도 즉각 경보를 발령했다. NSA는 "즉각적인 업데이트가 불가능하다면 위험이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시스템을 오프라인 상태로 두라"고 권고했다.
피해는 국경을 가리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정부 온라인 서비스 32개가 중단됐고, 영국 국가사이버보안센터(NCSC)는 이번 결함의 규모를 "전례 없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위키피디아 운영 단체와 디지털 도서관 인터넷아카이브 등 민간 단체도 피해를 입었다.
웹 인프라·보안 기업 클라우드플레어(NET)의 매슈 프린스 CEO는 취약점이 공개되기 몇 시간 전부터 자사 네트워크에서 이를 악용하려는 시도가 수천 건 감지됐으며, 공개 45분 만에 수만 건, 2시간 안에 수십만 건으로 불어나 현재는 수백만 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가 특히 주목받는 것은 AI가 공격의 문턱을 극적으로 낮췄다는 점 때문이다. 위즈리서치에 따르면 해당 결함은 수십 년간 존재해 왔지만, 실제 악용 가능성을 입증하려면 인간 연구자가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했다. 그런데 최첨단 AI 모델이 이 장벽을 크게 낮추면서 오래된 결함이 실전 공격 수단으로 탈바꿈했다는 분석이다. AI를 이용해 패치 이전에 취약점을 파고드는 공격에 대한 우려가 한층 커진 이유다.
▶②편에서 계속됨
kimhyun01@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