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고인원 기자= 비트코인 가격이 29일 아시아 거래에서 8만달러 아래로 떨어지며 이틀간의 반등세를 반납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의 실적이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글로벌 기술주에 매도세가 확산한 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매파적 통화정책 기조가 위험자산 투자 심리를 짓눌렀다. 국제유가의 추가 상승 가능성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도 암호화폐 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암호화폐 전문매체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이날 오전 비트코인(BTC)은 8만1700달러를 웃돌던 수준에서 약 7만9800달러까지 하락했다. 한국 시간 오후 6시 30분 현재는 8만달러를 소폭 웃도는 선에 거래되고 있다. 비트코인의 약세와 함께 이더리움은 2315달러 수준으로 내려갔으며 엑스알피(XRP), 솔라나(SOL) 등 주요 암호화폐도 일제히 하락하고 있다.
매도세는 아시아 증시에서 시작됐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의 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5배 급증했지만 시장의 높아진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면서 삼성전자 주가는 5% 넘게 떨어졌다. 삼성전자는 올해 자본지출이 전년 대비 약 60% 증가한 84조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대규모 인공지능(AI) 투자에 따른 수익성 우려가 다시 부각되면서 코스피지수는 2% 넘게 하락했고 나스닥100지수 선물도 1.4% 내렸다.
전날 연준의 기준금리 동결도 투자 심리를 위축시켰다. 연준은 기준금리를 연 3.75~4.00%로 유지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은 물가 안정에 진전이 이뤄지고 있지만 추가적인 대응이 필요할 수 있다는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금리를 더 오랫동안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추가 인상에 나설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ING는 지난 9월에 이어 오는 12월에도 기준금리가 인상될 것으로 전망했다. 금리 상승은 비트코인과 같은 위험자산의 투자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블랙록의 릭 리더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금리 방향에 대한 과도한 베팅을 경계했다. 그는 "실질금리는 여전히 매력적이며 우량 채권시장에서 상당한 이자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며 중간 수준의 듀레이션을 유지하면서 경제 상황을 지켜보는 전략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비트코인 가격이 다시 8만달러 아래로 떨어지면서 파생상품 시장에서는 대규모 청산이 발생했다. 시장 데이터에 따르면 최근 24시간 동안 청산된 암호화폐 선물 포지션은 총 3억5600만달러에 달했다. 이 가운데 가격 상승에 베팅한 롱 포지션이 2억500만달러를 차지했다. 비트코인 선물 청산액은 9400만달러, 이더리움 선물 청산액은 7200만달러로 집계됐다.
시장에서는 국제유가의 움직임이 향후 비트코인 가격을 좌우할 또 다른 변수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기술적으로 중요한 변곡점에 접근하면서 큰 폭의 가격 변동이 나타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WTI 일간 차트에서는 지난 3~4월의 큰 폭의 가격 변동 이후 고점이 낮아지고 저점이 높아지는 삼각형 수렴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 가격 변동 폭이 점차 좁아지면서 배럴당 102달러 부근으로 수렴하는 모습이다.
기술적 분석에서는 이를 코일(coil) 또는 페넌트(pennant) 패턴이라고 부른다. 가격 변동성이 축소된 이후 어느 한 방향으로 강한 움직임이 나타날 가능성을 시사하지만, 상승과 하락 중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현재 WTI 가격이 배럴당 105.50달러 부근의 상단 저항선을 돌파하면 지난 3~4월 기록한 117~119달러 수준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반대로 하단 지지선인 93달러 아래로 떨어질 경우 추가 하락 압력이 커질 수 있다.
유가 상승은 비트코인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국제유가가 올해 들어 약 80% 상승한 가운데 추가 상승이 현실화하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고 국채 금리도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연준의 긴축 기조를 장기화시키고 금융시장 전반의 자금 조달 비용을 높여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수요를 위축시킬 수 있다.
실제로 비트코인은 최근 주식시장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 코인데스크가 트레이딩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비트코인과 나스닥100지수의 최근 30일 상관계수는 0.64로 나타났다. 상관계수가 1에 가까울수록 두 자산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는 의미다.
반면 비트코인과 국제유가의 상관관계는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지난 3월 이란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 0.18이었던 두 자산의 30일 상관계수는 최근 -0.47까지 하락했다. 유가가 상승할 때 비트코인이 하락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국제유가가 추가 상승하면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 우려로 비트코인이 다시 하락 압력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유가가 하락하면 물가 부담이 완화되면서 주식과 암호화폐 시장 모두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산유국 이란이 내년도 예산 편성 과정에서 국제유가를 배럴당 130달러로 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이 지속되는 가운데 유가 변동성이 금융시장 전반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 이더리움 시장에서는 가격 하락과 별개로 검증자 보상 탈취로 이어질 수 있는 보안 취약점이 발견됐다. 인도의 디지털 인증서 업체 이무드라(eMudhra)가 발급한 인증서의 암호화 결함이 이더리움 검증자들이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7일 보안 연구원들은 이무드라의 중간 인증기관 8곳에서 사용하는 개인키가 충분한 무작위성 없이 생성돼 공개된 인증서만으로도 개인키를 알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공격자가 이를 악용하면 정상적인 서비스로 위장해 검증자가 받는 블록 보상을 자신의 지갑 주소로 빼돌릴 가능성이 있었다.
이에 이더리움 검증 소프트웨어 테쿠(Teku)와 베수(Besu)는 각각 보안 업데이트를 발표하고 문제가 된 인증서에 대한 신뢰를 차단했다. 테쿠는 특히 검증자의 개인키를 관리하는 외부 서명자 서비스를 공격자가 위장하는 경우를 가장 위험한 사례로 지목했다.
다만 테쿠 개발팀은 기본 설정으로 운영되는 이더리움 메인넷 노드는 영향을 받지 않으며, 현재까지 취약점이 실제 공격에 악용됐다는 보고도 없다고 밝혔다. 일부 운영 환경에서는 자바(Java)의 인증서 신뢰 목록을 별도로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비트코인이 8만달러 선을 내준 가운데 시장의 관심은 글로벌 기술주의 움직임과 연준의 향후 금리 경로, 국제유가의 방향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유가 상승이 인플레이션과 국채 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경우 암호화폐 시장의 반등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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