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고인원 기자= 17일 암호화폐 시장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3년여 만의 첫 기준금리 인상에도 대체로 반등했다. 시장이 이번 인상을 상당 부분 선반영한 데다 연준이 공격적인 긴축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위험자산 투자심리를 지지했다.
다만 국제유가와 미국 디젤 가격 급등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다시 커지고 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비트코인의 반등이 오래가지 못할 수 있다는 경계감도 여전하다.
한국 시간 오후 7시 5분 기준 비트코인(BTC) 가격은 7만6200~7만6400달러 부근에서 거래되며 24시간 전보다 1% 미만 상승했다. 솔라나(SOL)는 약 3% 올라 100달러에 근접했고, BNB와 암호화폐 거래 플랫폼 하이퍼리퀴드의 토큰 HYPE는 2%가량 상승했다. 이더리움(ETH)과 XRP, 도지코인(DOGE)도 각각 0.5~2% 올랐다.
특히 프라이버시 토큰 지캐시(Zcash·ZEC)가 두드러진 강세를 보였다. ZEC는 지난 24시간 동안 10% 급등한 1341달러 부근에서 거래됐다.
지캐시의 급등에는 암호화폐 투자회사 패러다임(Paradigm)의 공동창업자 맷 황의 발언이 영향을 미쳤다. 황은 지캐시를 "비트코인을 보완하는 프라이버시 수단"이라고 평가하고 패러다임이 ZEC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지캐시는 송금 과정에서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보냈는지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도록 설계된 암호화폐다. 최근 ZEC 보유자들은 신규 코인 발행량을 예정대로 줄이는 방식을 유지하면서 거래 속도를 높이는 방안에 찬성했다. 황은 지캐시 개발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자금 지원을 지지하면서 코인 보유자들의 투표와 다른 형태의 의사결정 방식을 함께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주 암호화폐 시장의 핵심 변수는 연준이었다. 연준은 16일 기준금리를 25bp(1bp=0.01%포인트) 인상해 연 3.75~4.00%로 올렸다. 3년여 만의 첫 금리 인상이다.
연준이 공개한 금리 전망에서는 정책위원 대다수가 올해 최소 한 차례 추가 금리 인상을 예상했다. 금리 전망 중간값은 올해 말과 2027년 말 모두 4.1%로 제시돼 올해 한 차례 추가 25bp 인상과 부합했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너무 높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 인상이 단지 "일정 부분의 완화적 기조"를 제거한 것이라고 밝혀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골드만삭스는 연준의 결정 이후 금리 전망을 수정해 오는 10월 추가 25bp 인상을 예상했다. 당초에는 9월 인상 이후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내다봤다. 모간스탠리도 10월 25bp 추가 인상을 전망하고 있다.
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시장도 10월 추가 25bp 인상 가능성을 50%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반영하고 있다. 향후 6개월을 놓고 보면 시장에는 추가 75bp가량의 긴축 가능성이 가격에 반영돼 있다.
그럼에도 이날 암호화폐가 반등한 것은 첫 금리 인상이 상당 부분 예상됐던 결과였기 때문이다. 비아BTC(ViaBTC)의 제프 코 수석 애널리스트는 "이번 금리 인상은 시장에 상당 부분 선반영돼 있었다"며 "연준이 현재 공격적인 긴축 사이클을 예상하고 있지 않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으며 시장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는 연준의 노력에 안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위험자산 전반도 반등했다. S&P500 지수 선물은 0.6%, 나스닥100 선물은 0.7% 상승했고 아시아 증시도 0.3% 올랐다. 연준의 통화정책 전망에 민감한 미 국채 2년물 금리는 전날 2024년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은 뒤 1.6bp(1bp=0.01%포인트) 하락한 4.711%를 나타냈다.
다만 비트코인의 중장기 전망에는 경계감이 남아 있다. 과거 연준의 긴축 사례를 보면 한 차례 금리 인상으로 끝난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1994년 이후 연준이 금리를 한 번만 올리고 인상을 종료하는 이른바 '원 앤드 던(one and done)'에 그친 것은 한 차례뿐이었다. 1955년 이후 12차례의 긴축 사이클에서도 단 한 번의 인상으로 끝난 경우는 드물었다.
◆ 美 디젤 사상 최고·유가 100달러 돌파… 추가 긴축 우려는 여전
비트코인이 비교적 성숙한 시장 구조를 갖춘 이후 경험한 2022년 긴축 사이클도 부담스러운 전례다. 비트코인은 2021년 11월 약 6만9000달러로 고점을 찍은 뒤 연준이 2022년 3월 첫 금리 인상에 나섰을 당시 이미 고점 대비 약 40% 하락해 있었다. 현재 비트코인 역시 지난해 10월 기록한 12만6000달러의 고점보다 약 40% 낮은 수준이다.
2022년에는 연준의 첫 금리 인상 이후 비트코인이 12일 동안 약 18% 반등했지만 이후 약 50% 추가 하락했다. 이에 따라 이번에도 단기적인 '안도 랠리'가 장기간의 약세 흐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다만 비교할 수 있는 사례가 사실상 한 차례에 불과하고, 당시에는 주식·채권·금속 등 다른 자산도 동반 하락한 데다 암호화폐 업계 내부의 대규모 혼란까지 겹쳤다는 점에서 단순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이다. 미국의 헤드라인 물가상승률은 5년 넘게 연준의 목표인 2%를 웃돌고 있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물가상승률은 2.4%로 낮아져 5년 만의 최저 수준을 기록했지만, 최근 중동발 에너지 충격이 물가 둔화 흐름을 위협하고 있다.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으로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브렌트유 가격은 모두 배럴당 100달러를 크게 웃돌고 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충돌로 원유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석유제품의 위험 프리미엄이 높아진 데다 정유시설의 빠듯한 처리 능력과 운송·산업 부문의 강한 수요까지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미국 디젤 가격은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다. 트레이딩뷰에 따르면 미국의 갤런당 디젤 전국 평균 가격은 이번 주 6.29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초 이후 상승률은 약 80%에 달한다.
JP모간은 "디젤 가격 상승은 우선 기업 비용을 통해 인플레이션에 반영되고 이후 비용 전가 정도와 수요에 따라 소비자물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디젤 가격 급등이 운송비와 공급망 비용을 끌어올려 소비자물가로 전이될 수 있다는 의미다.
국채 금리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5%대로 올라서면서 금융 여건이 긴축되고 위험자산에 부담을 주고 있다. 금리가 오르면 차입 비용이 높아질 뿐 아니라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비트코인에 비해 현금과 국채 등 이자 지급 자산의 상대적인 매력도 높아진다.
결국 이날 암호화폐 시장은 '예상했던 금리 인상'에 안도하며 반등했지만, 추가 긴축과 에너지발 인플레이션이라는 부담은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이다. 비트코인이 7만6000달러선을 지키며 단기 반등을 이어갈지, 2022년처럼 첫 금리 인상 이후의 안도 랠리가 다시 약세로 전환할지가 시장의 다음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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