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고인원 기자= 미국의 물가 상승세가 다시 가팔라지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15일 8만달러선까지 밀렸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이달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다시 부각되자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확산됐고, 암호화폐 선물시장에서는 하루 새 약 4억8300만달러 규모의 비트코인·이더리움 포지션이 강제 청산됐다.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비트코인(BTC)은 이날 아시아 거래 초반 8만달러 부근까지 떨어졌다가 한때 8만1500달러까지 반등했지만, 상승세가 꺾이면서 한국 시간 오후 7시 20분 기준 8만1000달러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다. 지난 24시간 동안 2~3% 하락한 수준이다.
이더리움(ETH)은 5% 가까이 급락해 2360달러선으로 밀렸고, XRP와 솔라나(SOL)도 약 4% 하락했다. 도지코인(DOGE)은 6% 가까이, 지캐시(ZEC)는 13% 가량 떨어지는 등 주요 암호화폐가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암호화폐 시장의 급락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위험자산 회피 움직임과 맞물렸다. 나스닥100지수 선물은 약 1% 하락했고, 한국 코스피지수는 장중 8% 급락하면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 美 물가 예상 웃돌자 금리 인상 확률 한때 47%
이번 하락의 직접적인 계기는 전날 발표된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9월 CPI는 전년 동월 대비 3.7% 상승해 8월의 3.4%보다 상승폭이 확대됐다. 시장 예상치도 웃돌았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 상승률 역시 2.4%에서 2.6%로 높아졌다.
물가 상승 압력이 예상보다 강하게 나타나면서 시장에서는 연준이 이달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수 있다는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10월 금리 인상 확률은 물가 발표 전 약 22%에서 발표 직후 한때 47% 가까이 치솟았다. 이후 26% 수준으로 낮아졌지만, 발표 이전보다는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예측시장 폴리마켓에서도 금리 인상 가능성이 한때 50% 가까이 상승했다가 30% 안팎으로 후퇴했다.
인도 암호화폐 거래소 지오투스(Giottus)의 비크람 수부라지 최고경영자(CEO)는 "예상보다 강한 미국의 물가 지표가 고금리 장기화 우려를 다시 불러일으켰다"며 "연준의 다음 행보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기관투자자들의 수요도 여전히 취약하다"고 말했다.
◆ 하루 새 4억8300만달러 청산…이더리움에 충격 집중
암호화폐 가격이 급락하면서 레버리지 투자자들의 강제 청산도 잇따랐다.
암호화폐 데이터업체 코인글래스(CoinGlass)에 따르면 아시아 오전 거래 시간 기준 지난 24시간 동안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선물시장에서 약 4억8300만달러 규모의 포지션이 강제 청산됐다.
이 가운데 이더리움 선물 청산액은 약 2억8600만달러로, 비트코인의 1억9700만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이더리움 선물시장의 미결제약정 규모는 약 300억달러로 비트코인의 520억달러보다 작다. 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이더리움 투자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충격이 집중된 셈이다.
솔라나 선물에서도 약 3100만달러, 지캐시 선물에서는 약 1900만달러 규모의 청산이 발생했다.
강제 청산은 차입금을 활용한 투자자가 가격 급변으로 증거금 유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거래소가 포지션을 자동으로 종료하는 것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추가 매도 압력이 발생하면 가격 하락이 다시 강제 청산을 부르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청산액은 강제로 종료된 포지션의 명목가치로, 투자자들이 실제로 잃은 현금 규모와는 다르다.
◆ 비트코인 ETF 하루 만에 순유출…기관 수요에도 경고등
암호화폐 시장의 투자 심리를 떠받쳐 온 미국 현물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에서도 자금 이탈이 나타났다.
지오투스에 따르면 미국 현물 비트코인 ETF에서는 14일 하루 동안 1억5050만달러가 순유출됐다. 전날 1억7570만달러가 순유입된 지 하루 만에 자금 흐름이 반전된 것이다.
시장에서는 고금리 장기화 우려가 이어질 경우 기관투자자들의 암호화폐 매수세도 약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시장조성업체 STS디지털의 앤더슨은 코인데스크에 "다음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결정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불확실성이 모든 자산군의 유동성을 훼손하고 위험자산 선호 심리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연준이 이달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예상했다. 당시 CME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에서도 동결 가능성은 70% 이상으로 반영됐다.
앤더슨은 "최근 디지털 자산에 대한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암호화폐는 거시경제 변수에 갈수록 민감해지고 있다"며 "에너지 가격 충격과 채권시장 변동성, 인공지능(AI) 관련 기업들의 밸류에이션 부담이 투자 심리를 짓누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 블랙록 암호화폐 운용자산 63% 급증…장기 투자 수요는 여전
단기적인 시장 불안과 달리 기관투자자들의 장기적인 암호화폐 투자 수요는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이 14일 발표한 3분기 실적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디지털 자산 운용 규모는 796억달러로, 6월 말의 488억달러보다 63% 증가했다.
3분기 블랙록의 디지털 자산 투자상품에는 79억달러가 순유입됐다. 올해 상반기 기록한 약 22억달러의 순유출을 모두 만회한 것이다.
다만 운용자산 증가분 308억달러 가운데 229억달러는 암호화폐 가격 상승에 따른 평가이익이었다. 신규 자금 유입보다 시장 가격 회복이 운용자산 증가에 더 크게 기여했다는 의미다.
블랙록의 디지털 자산 운용 규모는 1년 전 약 1040억달러와 비교하면 여전히 23% 적다. 지난 12개월 동안 63억달러가 순유입됐지만, 같은 기간 자산 가격 하락으로 306억달러의 가치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는 기관투자자들의 자금 유입이 지속되더라도 암호화폐 투자상품의 운용 규모가 기초자산 가격 변동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 금은 오르는데 비트코인은 급락…'디지털 금' 논쟁 재점화
비트코인이 글로벌 증시와 함께 급락하면서 금과 비트코인의 역할을 둘러싼 논쟁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금 가격이 온스당 4200달러 부근에서 거래되는 가운데 비트코인은 최근 8만4000달러선에서 8만1000달러 부근으로 밀렸다. 인플레이션과 화폐 가치 하락에 대비하는 자산으로 주목받아 온 비트코인이 정작 물가 충격에는 위험자산처럼 반응한 것이다.
요크빌 아메리카(Yorkville America)의 스티브 님츠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코인데스크 기고문에서 금과 비트코인을 경쟁 관계가 아닌 화폐 가치 하락에 대응하는 두 가지 자산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금이 수천 년 동안 준비자산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해 온 반면, 비트코인은 아직 제도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초기 단계에 있다고 평가했다.
중앙은행들은 이미 확립된 법적·수탁 체계를 활용해 금을 매입하고 있지만, 기관투자자들은 현물 ETF 등 새롭게 구축된 투자 수단을 통해 비트코인에 접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비트코인이 금과 같은 안전자산 역할을 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2025년 학술지 '리소시스 폴리시(Resources Policy)'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금과 비트코인 모두 금융시장 급락기에 일관된 헤지 수단이나 안전자산으로 분류하기 어렵다는 결과가 나왔다.
님츠 CEO는 이러한 연구 결과가 두 자산의 장기적인 화폐 가치 하락 방어 기능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2027년에 던져야 할 질문은 금과 비트코인 중 어느 자산이 승리하느냐가 아니라 구매력이 약화되는 환경에 대비해 각각을 포트폴리오에 얼마나 편입해야 하느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비트코인의 단기 방향은 연준의 통화정책과 글로벌 금융시장 유동성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기관투자자들의 장기적인 자금 유입이 이어지고 있지만, 물가 상승과 고금리 장기화 우려가 지속되는 한 비트코인도 위험자산 전반의 매도 압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koinwon@newspim.com
